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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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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6-28 (월) 13:01
홈페이지 http://www.chinam.org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9732    
듣기 싫어하는 설교와 설교방법 40가지

듣기 싫어하는 설교와 설교방법 40가지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설교
설교의 주인은 바로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고 설교자나 세상의 온갖 사건들과 저속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만 보인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나가는 일은 아니다. 세상 이야기도 있고 예화도 있고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데 방해되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목사의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면 목사의 집이 보이고, 목사가 여행을 다녀오면 다녀 온 여행지의 모습이 보이며, 선거 철이 되면 강단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설교 강단의 주인 바꾸기는 성도들을 당황하게 하고 설교에 식상하게 할 것이다, 
어떤 목사의 말이다. "오늘의 한국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설교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는 말씀의 주인이 보이지 아니함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설교자의 용모만이 감상되고 그의 개인적인 체험담을 들으면서 그와 관계된 연상(聯想)만을 계속된다. 그리고 회중은 거기에 도취되어 웃고 울다가 "기도합시다"의 구령에 따라 기도를 한 후 폐회 찬송을 부른다. 그들을 붙들고 오늘의 설교에서 하나님을 만났는지의 여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성서적인 설교는 바우만의 다음의 충고대로 하나님이 현존하심을 전달하여야 한다."
바우만은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다음의 종결어(終結語)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설교의 탈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충분히 입증을 해 주고 있다. 설교 종결어의 주어는 어떤 경우도 설교자 자신이다. 여기서 외국의 설교자와는 달리 한국의 설교자는 너무나 자신의 등장을 극심한 경지에까지 끌고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설교 내용이 설교자의 말과 경험과 지식과 그가 즐겨 쓰는 예화로 완전히 채색된다. 그리고 회중들로부터 '아-멘'만 유발시키면 어떤 이야기들도 하나님의 순식간에 말씀으로 변화된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 너무나 뚜렷이 나타난 현상은 막상 전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말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씀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설교, 그것은 가장 심각한 설교의 위기를 몰고 온 위급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며 계시지 않는 설교는 생명 없는 자기 선전이나 세상의 무엇을 광고하는 연설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 성도들은 틀림없이 죄인의 본색을 드러내서 이를 들어 내고 목사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목사는 가끔 자기가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이 시대에 일어 나는 모든 일들을 분석하고 관조하여 성도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상 이야기를 장황하게 불어 말하려 한다. 50-60년대 우리 나라가 전쟁과 기근과 혼란으로 한참 어려울 때에 목사들은 종말론적 설교를 많이 하면서 당장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자기에게만 특별히 알려 주신 것처럼 소리 높여 설교했다. 그러나 그 설교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었으며 세상을 비관하게 하고 공포와 공갈로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되고 말았다. 종말 즉 주님의 재림은 그 시간이나 정황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주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면 정황과 시간이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는 복음의 진수를 외면하고 혼란과 가난이 주님의 재림을 촉발하는 원인인 것처럼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런 공갈 협박 식의 설교가 성도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오직 살아 역사하시는 참된 복음만이 죽은 심령을 살리며 그런 역동적인 새 삶을 주는 말씀의 은혜를 성도들은 사모한다. 그런 설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요, 바르게 나팔을 부는 설교자의 인격과 생활과 입술을 통해 전달된다.
 
 거룩한 말씀이 없는 설교
나는 가끔 설교를 준비할 때에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나, 누구에게 들은 예화나 신문에 보도된 어떤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 본문을 선택하고 설교를 한 일이 있었다. 즉 세상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함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성전 건축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목사가 설교에서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목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되어진 말씀이 설교자에 의하여 현장의 언어로 선포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은데서 생긴다.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나 경험이나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종교 수필 또는 교양 강좌가 아니다. 언제나 본문으로 봉독한 성경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설교자의 정도(正道)다. 그럼으로 진정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 현장에 얼마나 많은 회중들이 모여 열광적으로 '아멘'을 연발하는가에 눈을 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들에게 전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강단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설교자의 연출이 속출하고 있다. 즉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인 본문의 봉사자가 아니라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예화를 나열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들려주는 현상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견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지식과 분석, 또는 경험을 말하고 난 다음에 그 경험담에 좀더 튼튼한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봉독한 본문을 인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를 선전하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설교 현실을 우리의 한국 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본다. 이러한 선상에서 오늘도 설교하는 목사들은 다음의 말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재원(財源)이 시대적인 사건, 문학, 철학, 정치 이데올로기 등이 될 수는 결코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설교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까지도 설교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설교의 메시지는 성경에만 그 원천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목사가 알아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설교와 간증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교는 단순한 신앙 간증과는 너무나 다른 구속력을 가진다. 신앙 간증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회중들로부터 공감대만 형성되면 된다는 지극히 한정된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는 그 기준이 그 날의 설교 본문에 있다. 그 본문은 설교자와 회중 모두에 의하여 함께 읽혀진다. 거기서 회중들은 그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소유한 상태에서 설교자가 그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자신들의 삶의 장에 적용시켜 주는지를 주시한다. 그러기에 설교는 수많은 회중의 감시를 받으면서 본문이 말씀한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되는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설교자는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설교자의 앞에 앉아 있는 무리들로부터 우선적으로 봉독되어진 말씀의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가 될 것을 철저히 요구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만일 목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하고 분명한 제한성을 다른 이야기들로 흐려 애매모호(曖昧模糊)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진 죄인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희석(稀釋)시켜 세상에서 흔히 듣는 잡담(雜談)이나 죄인들의 입에서 얼마든지 오르내리는 말로 전락시킨다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이야기로 만들지 말라.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의의가 있을 수 없는 정설이다. 그러나 오늘 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는 일이 많다. 즉 자기를 선전하거나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생계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농담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돌려 치려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땅에 글을 쓰신 일이 있으셨는데 그 글을 보고 살기 등등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묻기를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재미를 본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본 사람들이 놀라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낄낄거리며 웃는다.
우리들의 도덕적인 양식으로는 자기 아버지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런데 강단에서 목사들이 성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주님을 농담거리로 삼는 일이 있다. 목사의 농담은 주님을 비하하거나 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 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 주님의 심각한 말씀과 행동이 이런 식으로 격하되어 농담의 소재가 된다면 성도들은 분노할 것이다.
지져스 크라이스트라는 뮤지컬이 이화 대학의 강단에서 공연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공연을 보며 극찬을 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 뮤지컬이 어디선가 공연되었다. 그런데 그 뮤지컬의 내용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연인으로 사랑했는데 그 사랑이 열매 맺지 못했다는 슬픈 내용이다. 주님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베푸신 더 찾아 볼 수 없는 사랑이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아니한 비정하고 매몰찬 사랑으로 묘사가 되고 그 사랑을 얻지 못한 타락한 여인의 슬픔으로 묘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 대하여 우리 기독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거나 그 잘못된 짓을 꼬집어 항의하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름 성경 학교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 전도사가 강사를 한 사람 초청해 왔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뿐 아니라 동남아 일대를 다니면서 어린이 집회를 전문적으로 인도하는 유명 강사라고 했다. 그는 주로 인형극을 공연했다. 나도 전도사의 그런 소개를 듣고 상당히 기대를 하며 그의 공연을 보았는데 그 내용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 공연을 보면서 약간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으나 내일은 내용이 달라지겠거니 하고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다음 날도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은 분위기를 한껏 잡고 음산한 목소리로 인형극을 진행하는 그 전도사의 이야기에 함빡 빠져들었다. 3일 동안 진행된 여름 성경 학교의 중요한 집회 시간이 이렇게 귀신 쫓아낸 이야기로 50%나 사용되고 말았다. 나는 그를 더 이상 집회를 못하게 돌려보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그 인형극을 보고 난 뒤 얼마나 그 인형극이 충격적이었는지 다른 배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라는 말만 외쳐 대고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 속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 속으로,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척도(尺度)로,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현상이 정말 두드러지게 만연되고 있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단에 속한 무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들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성도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 설교를 극도로 싫어한다. 목사의 이런 설교를 듣고 함께 웃고 즐기는 것 같지만 되돌아서서 '오늘도 쓸데없는 잡소리만 들었다'라고 입을 삐죽인다. 하나님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말씀이 전해지지 않고 왜곡된 말만 계속 전한다면 그는 목회 생명이 단축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들은 정말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말씀을 그 말씀으로 받아들여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고자 자기를 성찰하고 개선해서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도록 설교해야 한다. 성도들은 그런 설교를 원한다. 흥미 위주의 설교를 하지 말라.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새롭고 충격적인 무엇을 주려는 유혹을 여지없이 떨어 버리라.

 잘못된 성경 해석.
목사가 설교나 성경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왜냐하면 성경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다 알다 싶이 신학교에서 배운 성경은 성경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과 몇 가지 사례를 배웠을 뿐이다. 즉 신학교에서 성경 전체를 알 수 있도록 배운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완전한 지식을 배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나온 목사들이나 성도들은 신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성경을 아주 잘 알 것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인정해 준다.
더욱 더 웃기는 것은 목사가 정통적인 보수 개혁 신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엄청난 오류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목사가 이단적인 요소가 있는 신학교를 나왔다면 그가 바른 성경 해석을 했더라도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즉 목사가 어느 신학교 출신인가에 따라 잘못된 성경 해석도 바른 것이 되고, 이상한 신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바른 것도 그릇된 해석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우리 한국 교회에 비일비재(非一非再)하여 가장 보수적이라는 교단의 강단에서 가장 들어 줄 수 없는 성경 해석이 난무하는 경향이 있다.
150여명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가 가정 주간에 설교를 했다. 나는 특별한 기회가 있어 그 설교를 들을 수가 있었다. 목사는 요셉이 애굽에서 고생하다가 성공한 이야기를 본문으로 설교를 했는데 아주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 목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갖 손짓 몸짓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낮추었다 하면서 듣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정말 열정적인 설교요 혼신의 힘을 다한 설교를 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목사의 유도에 따라 연신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그 설교는 크게 잘못된 설교였다. 목사는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가 그렇게 견딜 수 없는 고생을 했어도 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고생을 견딜 수 있었고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우리도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현실이 답답하고 어렵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꿈, 즉 희망을 가지고 살아서 요셉처럼 크게 인생을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축원 소리에 성도들은 화다닥 놀라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설교 후에 하는 목사의 기도였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요셉처럼 큰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크게 성공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아 멘" 언 듯 보기에는 그럴듯한 설교요 기도지만 이런 설교는 하나님의 복음이 아니며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가 아니다. 사람이 역경 중에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말이다. 희망과 성공 사이에 꼭 있어야 할 하나님 없어 복음이 아닌 '적극적 사고 방식의 강연'인 것이다.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값싼 연설에 불과하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하나님이 꿈꾸게 해 주신 꿈이지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이상과 꿈이 아니며 희망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요셉이 노력을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노력과 인내심에 의해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미리 애굽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에 의해 성공하게 된 사람이니 곧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요셉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와 늘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으며 요셉은 그런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 본문의 설교는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니 믿음의 생활을 잘해서 요셉과 같은 축복을 받고 살아야 한다'고 설교해야 한다. 그런데 그 목사의 설교에 이런 하나님과 요셉의 관계가 한가지도 언급이 되지 않았다. 오직 사람이 이상과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요셉과 같이 성공할 수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고 강변했다. 이것은 설교가 아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인생이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을 붙일 만한 연설인 것이다.
어떤 목사가 주님이 오시기 전에 어린아이를 밴 여자에게 화가 있으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어린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은 죄가 많다는 말씀이다"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60년대에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닌 부흥 목사들이 단골로 쓰던 공갈 협박용 성경 해석이었다. 어린아이 잉태한 것을 죄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해 버리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지 아는가?
이런 목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말씀 해석의 오류는 결국 그 목사의 목회 생명을 단축하게 한다. 성도들이 목사의 말씀 실력 없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지라고 하나님께서 그대로만 두고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나에게는 지난 30여년 동안의 설교 노트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 설교 노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겁이 난다. 그 설교 가운데 얼마나 성경을 잘못 해석한 설교들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던가? 몇 번이나 성경을 통독하였으며 그 말씀에서 은혜를 받고 감격 감사하여 눈물을 흘린 일이 있던가? 진실로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찬송가가 마음에 와 닫는 신앙 고백을 해 본 일이 있는가? 사단은 목사의 성경 무식을 틈타고 들어 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신령한 강단을 자기 말을 전하게 하는 무대로 사용하고 있다. 목사들은 그런 사단의 장난에 놀아 난 일은 없는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 노회에 수 십년 동안 중으로 있던 분이 개종하여 목사가 된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50이 넘어 개종한 그 분은 어떤 중소 신학교를 나왔고 목사가 되어 우리 노회에 가입했다. 하도 귀한 목사라고 생각되어 어떤 여 전도사가 결혼을 자원해서 오붓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 분이 고생하는 것을 보다 못한 노회 목사들은 그 목사를 초청해 사경회를 하고 생활비를 도와주기로 묵시적인 약속을 했다. 그래서 나도 순서대로 그 목사를 초청해 집회를 하기로 했다. 특별한 목사가 집회를 인도한다 하니 성도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그 목사가 하나님의 강단을 차지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설교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주로 그가 승려로 어떤 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인데 승려로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이틀 동안 계속했다. 예를 들면 불교 승려들이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고승이 되는데 그들은 앞으로 되어질 세상일을 모두 잘 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여사가 시해(弑害)를 당하기 전에 서울의 모 사찰의 주지는 이미 그 날짜를 다 알고 있었으며 죽는 모습까지도 알았지만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 말하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의 경지가 깊어지면 천하는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얻는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불교의 경전인 팔만 대장경이 어떻고, 목사 되기는 쉽지만 정식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련과 고행을 겪어야 하는 가라는 등 도무지 그가 목사인지 고승인지 구별을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수 십년 동안 불교의 승려로 살았다. 그러나 목사 된지는 겨우 일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의 개종은 3년을 넘지 못했다. 그러니 아는 것은 불경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석가의 말인 것이다. 그는 아직도 석가의 제자로서의 탈을 벗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목사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성도들은 머리가 아파했다. 강단에서 보는 우리 성도들의 모습은 사단에게 직격탄을 맞고 정신을 잃어버린 졸병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회를 도중에 중단하고 그만 두게 했으며 노회의 여러 교회에 집회를 취소하도록 했다. 나중에 그 분이 부천 어디에선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직 소식을 모른다.
성도들은 이런 엉터리 성경 해석과 다른 이야기들을 듣고자 하여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말씀의 능력이 살아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는 것이지 잘못 해석된 말씀을 전해서는 영적으로 혼란스럽고 시험을 당하게 된다.

 목사 자신을 말하는 설교.
설교를 듣기 원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동적인 복음을 듣기 원한다. 그런데 어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착각한다. 성도들은 이런 목사의 자기 이야기를 싫어한다. 목사의 자기 자랑이나 자기 선전을 하지 말라.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전하는 '말씀의 사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칼빈은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대사'라고 했다. 그리고 칼 발트도 설교를 정의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선택한 설교자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들려주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래서 설교는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삶의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 한국의 신학 교육의 초창기부터 설교학을 가르쳤던 곽안련 교수는 "목사는 성도에게 마치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아는 바를 너의 말하겠다.'와 같은 태도"는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어떤 목사들은 이런 설교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자기 이야기를 마치 하나님의 복음 인양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의 이야기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설교의 주어는 성삼위(하나님, 예수님, 성령님)로 분명하게 구성되고 그 뜻을 밝혀 주고 적용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설교의 본질이다. 이럴 때만이 메시지의 주인이 주님이 되시고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는 단순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만일 어느 누구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설교의 주체로 한다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대게 자기 이야기를 복음처럼 말하는 목사들을 보면 사실상 별 볼일이 없는 일들을 대단한 일인 것처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말하고 그것을 본 받으라고 강요한다. 그들은 자기가 빈곤한 가정의 출신이라든지 아니면 청년 떼에 엄청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설교를 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든지 하는 따위의 유치하고 보잘 것 없는 자기 성공담을 말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어느 누가 그런 설교 아닌 이야기를 듣고 있겠는가?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을 수 없이 거듭 반복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를 예로 들어 설교를 하자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의 뜻은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또는,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그 뜻은 이러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착각 잘하는 목사는 이 말씀을 "제가 길을 가는데 어떤 노인이 짐을 지고 가셔서 그 짐을 대신 져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이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복음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한다.

 목사의 착각적 과신(過信)
인간이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일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그 분야에 전문인이 되어 스스로 진전시킬 수 있는 요령과 기술이 터득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의 가진 도사(道士)의 경지에 이른다. 설교 사역도 같은 맥락에서 설교에 도사가 된 목사가 있다. 이렇게 설교 도사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목사는 강단에 설 때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유창한 설교를 펼쳐 나아간다. 그 자연스러운 몸놀림과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달변에서 성도들은 목사의 전문성과 그 성스러운 직책에 대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멘을 연발하면서 그 설교에 심취된다. 실제로 나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국에 부흥회를 다니는 어떤 목사가 설교에 넘치는 자신감을 보인 일을 보았다. 그는 우리 교회에 부흥 목사로 초청을 받았을 때에 "김 목사 이번 부흥회에 어떤 점을 강조했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질문했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서 성도들이 은혜 받게만 해 주세요"라는 주문 대로 그렇게 설교를 했다. 물론 원고는 한 장도 없었다. 그 목사는 건축이면 건축, 전도면 전도, 기도면 기도, 헌신이면 헌신, 모든 우리 기독교의 전문 설교에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 앞에서 어떤 설교가도 자신의 부족에 대한 무엇을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설교에 자신이 넘치는 목사도 자기 설교를 비디오에 담아 스스로 볼 필요가 있다. 나도 남 못지 않게 설교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내 설교에 아주 실망한 일이 있었다. 친구 교회에서 장로, 집사, 권사의 임직식에서 설교를 맡아 하게 되었는데 모든 예식을 비디오로 찍었다. 며칠 후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 왔다. 나는 무척 반가워하며 그 테이프를 보게 되었는데 얼마 후 크게 실망해서 끄고 말았다. 내가 설교한 장면 대문이다. 25년도 더 넘게 설교한 내 모습이 겨우 저 정도인가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신경을 건드리는 놓은 목소리였다. 밀을 할 때마다 너무 많이 노출되는 아랫 이(耳)도 그랬다. 잘 한다고 며칠씩 준비한 설교 내용도 혼란스러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가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잘하고 있다고 했다. 100% 마음에 들지 않는 목사의 설교를 잘하는 설교로 듣고 있는 아내와 성도들은 그 동안 어떤 은혜를 받았을까? 정말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 참담했다.
자신의 설교가 나처럼 만족스럽지 못한 목사가 많을 것이다. 반대로 만족한 목사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목사는 얼마나 좋을까?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내 설교의 모습을 다시 보기 싫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설교 모습을 보고 자기가 만족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있어야 발전한다. 이런 자각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 없는 목사들은 착각적 과신의 늪에 빠져서 스스로 만족하며 설교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설교의 교조적(敎條的)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교만의 자리에 둥우리를 틀고 안주해 버린다. 평생을 설교학 교수로 살았던 일리온 죤스(Ilion Jones)는 조각가 도발드슨 (Thorvaldsen)의 말을 연상하면서 "목사가 자신의 설교에 만족할 때 그는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목사가 자신은 초보 단계를 벗어난 완벽한 설교자라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완벽한 설교를 추구하는 설교자는 있으나 완벽한 설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설교학에서 반복하여 가르치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설교가 최상의 단계에 이른 것 마냥 믿고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착각적 과신의 주인들이 우리의 한국 교회에 강단에 너무 많이 서 있음을 본다. 진정 설교의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는 목사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떠나고 다음의 말씀만 그 귀에 들려줄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성도들은 이런 교만한 자의 거만한 설교를 극도로 싫어한다.

 외식하는 목사의 설교
우리 한국적 상황과 인식에서 성도와 세상 사람들은 아직까지 목사에 대한 어떤 기대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진실한 양심이며, 정(正)의 척도며, 죄인이 찾아 갈 마지막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목사에 대하여 그런 기대를 가졌다고 해서 그들의 기대대로 목사가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들어 이런 의문과 회의(懷疑)는 더욱 더 깊어져서 과연 우리 사회가 목사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하고 잇는가를 의심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어떤 목사가 한국 교회의 평신도를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바 있는 [설교 사역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식구조 분석]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답을 얻었다. "귀하가 아는 설교자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들의 설교와 삶의 연관성이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여기에 대한 응답자의 80.2%가 "완전치는 못하지만 설교대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하였고, 10.3%는 "설교자는 설교하는 대로 생활한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응답의 비율은 서구 교회와 비교해서 월등하게 높은 비율이다. 그런데 이 조사를 한 목사는 이런 현상은 "이 땅이 유교 문화의 영향권에서 오랫동안 정착해 온 결과로서 도덕성의 강조와 선비의 고결한 인격성에 대한 높은 기대가 그대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사고 방식에 의한 답이지 설교하는 목사가 실제로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한 대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설교하는 목사에 대한 기대가 이처럼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들의 대답을 그렇다고 해도 목사 스스로가 하나님 앞과 자기 양심 앞에서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을 해 보아야 한다. 정말 가장 고결한 성직자인 목사가 자신이 전달한 메시지를 먼저 실천하는 본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최근 들어 이런 자책(自責) 섞인 대답이 나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목사들이 각종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에서 기인된다. 성전에서의 살인 사건, 밀수에 가담한 목사들의 이름, 그리고 외화 낭비에 선두 주자로서의 목사의 생활, 외국 신학교의 분교를 설치하고 박사 학위를 남발하는 주범들, 출처를 알 수 없는 박사들,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간음과 모략 중상들의 사건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현상은 오늘의 설교 사역을 가장 멍들게 하는 치욕적인 사건들이다.
설교자가 가져야 할 아름다운 모습은 주님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과거 우리 한국 교회가 인구 비례 3%의 성도들이 나머지 97%의 국민을 선도했던 대의 목사 상은 남다른 것이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헌신적이고 검소한 생활의 주인이었으며, 원수를 용서하고, 밤을 세워 나라와 민족의 죄 짐을 지고 통곡하며, 생명을 바쳐 애국 애족을 실천했다. 풍기는 인격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결한 품성과 지식을 소유한 것이 한국의 목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사는 물질의 풍요를 앞서서 누리는 상류 사회의 생활인들로 변화되고 그러치 못한 몇몇의 목사들은 그 계층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작태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어떤 목사는 자기는 죄인이지만 주님의 말씀은 바로 전한다 하면서 자기가 선포한 설교와 자기의 생활의 이질 현상(異質 現狀)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미화(美化)하고 있다. 어떤 부흥 목사의 부인이 하루는 부흥회를 인도하는 남편에게 찾아 와 모든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집에 가면 마귀가 되고, 교회에 오면 천사가 되니 나는 천사와 같이 살고 싶다'면서 강단에 이불을 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 설교는 천사처럼 하면서 살기는 마귀처럼 사는 목사가 없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우리 한국 교회의 비극이 얼마나 클지도 헤아려 보자. 주님의 경고처럼 우리는 모두 망하고 말 것이다.

 자기를 주님과 선지자로 말하는 설교.
내가 만난 다른 목사는 엄청난 비교를 했다. 그날의 설교는 본문이 엘리야가 아합에게 쫓겨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소원하는 말씀(왕상 19:4)이었다. 목사는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성도들이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자기가 엘리야와 같은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으며 낙심된 일을 당했다고 하면서 엘리야가 죽을 고통에서 하나님을 믿고 승리한 것처럼 자기도 그렇게 승리했다고 했다. 물론 목사와 성도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자는 말은 정말 잘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목사는 자기도 몇 번씩이나 엘리야와 같은 낙심을 했다고 몇 번씩 강조해서 말했다. 그 목사는 인제 겨우 40대 중반이 이었는데 어떻게 자기가 엘리야와 같은 고통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어느 누가 엘리야와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고통을 당하자고 해도 그런 고통을 주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없다. 그런데 그는 자꾸 자기가 엘리야와 같은 고통을 당했다고 하면서 성도들에게 자기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들을 주님과 비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과도 비교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망령된 이야기를 아주 거리낌없이 설교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설교하는 목사가 스스로 하나님만큼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지는 무의식적인 망말인 것이다.
이런 설교는 듣는 사람들, 특히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듣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역겨울 정도다. 나이가 40인 사람이 60인 사람에게 자기를 본 받아 세상을 살라고 해서는 좀 이상하다. 가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목사는 자기를 낮추고 드러내서는 안된다. 어디 설교가 목사를 본 받아 살라고 가르치는 것인가?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를 본받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본 받아 살아야 한다고만 말해야 한다. 혹 성도들이 목사를 본받자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과 주님과 엘리야는 모두 우리와 비교될 수 없는 분들이다. 목사가 강단에 선다고 하나님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고 사도가 되고 선지자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목회의 수단과 방편으로 이용되는 설교
설교가 목회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젊은 목사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목사들이 설교를 설교의 근본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이런 일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교가 목회의 한 방법으로 된 예는 수없이 많다. '설교를 잘해야 교회가 부흥된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아 성전 건축 헌금을 충분히 해야 한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 같은 말들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말들로 들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런 말들이 잘못된 발상과 인식에서 나온 말인가는 설교의 본질을 헤아려 보면 금방 판단된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설교자인 목사를 당신의 자녀들 앞에 세워 말씀하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설교에 대하여 이 이상의 무엇을 말해서는 안되며, 이 이하의 무엇을 말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해야 교회가 부흥된다'는 말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했더니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는 의미로 정립되어야 한다. '설교를 잘 하는 목사'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잘하는 설교', '설교 잘하는 목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바로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작금(昨今)의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씀만 있지 않다. 잘 못 믿는 자에게는 잘 믿으라 하시고, 죄인에게는 회개하라 하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신다. 이미 받은 축복이 크니 늘 감사하고 충성하라고 하신다. 세상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신다. 온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 하시며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하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시고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라고 하신다. 성경 이야기에서 말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칭찬보다는 경고가, 받는 축복보다는 헌신이, 선별된 지식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자신보다는 이웃이 그리고 하나님이, 미움과 다툼과 시기 질투보다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가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설교하는 목사가 이렇게 더 많이 강조된 죄 문제, 의무와 책임, 헌신과 희생, 자기 이익 보다 하나님을 위한 충성 등을 강조한다면 그 목사를 설교 잘하는 목사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설교 잘하는 목사'의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설교자라는 정석(定石)대로 해석되지 않고, 듣는 성도들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는 설교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설교를 아주 잘하는 목사라고 해서 모셔 왔는데 성경의 말씀대로 비례해서 설교를 한다면 성도들은 결단코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즉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설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설교 못하는 목사'로 매도되어 이삿짐을 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설교의 엄격한 의미에서 '설교 잘하는 목사'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전하던지 바르게 전하면 전하는 사람이 목사든 어린 아이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발람은 당나귀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크게 놀랬다.(민 22: )  
설교는 기본적으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설교자 개인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없다. 설교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무대가 될 수 없고 회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집단으로 만들 수 없고 이익을 추구할 수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설교자가 교회 성장을 목표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성전 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대의 소수의 목사들에 의하여 설교의 본질적인 성격이 퇴색하고 있다. 어떤 목사는 자신의 무식과 개으름을 숨기기 위해 신비주의를 도입하기도 한다. 방언과 예언의 신비한 현상을 유도하여 그것이 말씀 위에 군림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어떤 목사는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어하고 지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교를 사용한다. 그런 목사는 자신의 권위를 절대화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상대를 저주하기도 한다. 이럴 때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강단이 헌금을 모금하는 금고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을 설교가 목회자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말한다. 한 때 우리의 목사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다. 부흥 집회를 위하여 강사를 모실 때 특유한 방법으로 헌금을 많이 하게 하는 강사를 초빙했다. 그 때 강사는 자신과 교회가 집회 중에 거두어 드린 수입을 어떻게 분배해야 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혹시 지금도 이런 파안무치(破顔無恥)한 일이 없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면 얼마나 한국 교회 강단이 철저하게 탈선하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어떤 형태든 설교가 목사의 야망 달성을 위한 목회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효과적인 이기(利器)로 전락된다면 거기에는 밝은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어둡고 침울한 장래만이 있을 뿐이다. 설교는 "은혜의 효율적인 방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결코 목사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또는 정신적 피곤을 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진정한 설교는 "죄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을 전하는 것" 뿐이다.

 발전 없는 목사의 설교
1960년대 후반에 클라이드 리드(Clyde Reid)는 '설교의 위기(Empty Pulpit)'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여기서 강단이 비어 있다는 말(empty pulpit)을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설교가 없는 교회 강단을 의미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도 좌석에 앉아 있는 성도들은 말 할 수 없이 허전해 하고, 전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심각한 곤경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은 '비어 있는 강단'이 아니라,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설교의 몰락' 또는 '설교의 임종'이라는 슬픈 비판들이 등장했다.
이와 같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목사들이 설교에 대해여 공부하지 않으며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되어진 결과다. 한국 목사 특히 앞으로 교회를 책임지고 나아 갈 젊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바른 종'되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단적인 증거가 있다. 인터넷 싸이트 가운데 회원이 1,500명이 넘고 매일 접속하는 사람이 500명이 넘는다는 싸이트 운영자를 만났다. 젊고 의욕이 넘치는 강도사는 목회에 대한 유익한 세미나를 교통이 좋은 지역에서 그 분야에 실력 있는 강사 목사들을 초청하여 가졌다. 그는 적어도 1,500의 회원들 가운데 1/10인 150명은 오지 않겠는가 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회비를 한푼도 받지 않는 목회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은 겨우 10여명이었다. 강도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요즘 목사들은 공부하려 오라고 하면 안 옵니다. 그 대신 인터넷에 동영상을 띄우면 많이 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Moksa 홈을 운영하면서 설교 게시판을 이용해 이런 광고를 한 일이 있었다. "나는 30여년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설교 분석을 해 드리겠으니 혹 원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설교 원문을 이 메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이 기록되어 있는 친구 목사의 설교 한편을 분석해서 올려놓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겨우 한 분 목사가 자기 설교를 보내 와서 분석해 보내 주었을 뿐이다. 물론 나의 이런 잘난 척하는 짓이 가소로워서 반응이 없었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목사들이 설교를 배우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니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나는 목사들이 자기 나름대로 설교에 대해 달관(達觀)했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물론, 오늘의 한국 교회 설교 사역은 아직도 건제(健在)한 면이 많다. 선진국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목사의 뜨거운 기도가 있고 생사를 걸고 뛰는 목회의 열심히 있다. 그리고 아직도 순교의 피가 우리의 바닥을 흐르고 선교의 뜨거운 열기가 쉬지 않은 교회가 우리 교회다. 어떤 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심취성(深醉性)이 강한 성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아직도 앞에서 열거한 설교의 위기 요소에 물들지 않은 맑고 귀한 목사들이 우리의 한국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는 생존 경쟁이 살아남기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목사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뛰고 설교하는데 이 작업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요구하는지 알아야 한다. 안일과 자만은 목사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이 사회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동시에 파괴시키는 무서운 사단의 병기다. 

 현실성이 없는 설교.
이런 설교는 설교하는 목사가 성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내가 잠시 몸담아 있던 노회에서는 이상한 풍속이 있었다. 노회 때나 매월 모이는 교직자 월례회에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하는 목사가 언제나 고정되어 있었다. 고정된 설교자는 회기(會期)의 노회 장이다. 그런데 그 해 노회 장은 나이도 40이 넘었고 목회도 상당히 오래 한 목사인데도 설교가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다. 목사가 노회 목사들을 앞에 두고 설교를 할 때에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말씀을 전하겠는데 늘 핵심이 빠진 뜻한 설교를 했다. 우선 그 설교가 상당히 어려웠다.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어렵게 표현하고 목사들의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를 주제로 했다. 또 한가지는 그 설교가 자기의 설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유명 목사의 설교를 노트에 기록해 와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설교의 주제와 내용이 듣는 목사들의 요구와는 너무 많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설교한 설교를 그대로 가져 와 설교하는 것 같았다. 노회 목사들이 모였으면 목회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를 말해야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하고 있으니 위로와 격려가 있는 설교를 해야 하는데, 그 목사는 으레 어디서 그런 주제를 가져오는지 '성도들의 애국심'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주제로 장황한 설교를 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설교는 목사에게 참으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설교가 듣는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고, 관심도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거나 전혀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 설교는 따분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연설이 되고 만다. 나는 그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언젠가 목사의 설교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연구가 노회 적으로 있었으면 생각했지만 아깝게도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정의 달 5월에 목사들은 가정 문제, 자녀와 교육 문제들을 설교의 주제로 해서 설교한다. 그런 설교들은 성도들 모두에게 아주 교훈이 되는 설교들이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Reuel L. Howe는 수백 개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평신도들과의 토의를 거친 뒤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회중 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이의 없이 너무 많은 사상을 설교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사상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질 때에 그것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자신들의 삶과 의미 있는 연결을 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감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그 자료를 심방 하면서 찾거나 부 교역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얻든지 아니면 장로나 성도들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들을 얻을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가장 적절히 사용하여 설교에 반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도들이 그 짧은 25분 동안의 시간에 무엇을 듣기 위해 교회를 나오는지,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성도들에게 하시고 싶어하시는지를 알고 설교하는 중책이 목사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고 성도들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설교를 매 주일 하고 있다면 그 목사를 틀림없이 목회 생명이 단축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목사를 배척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그를 강단에서 몰아 내실 것이 뻔하다. 아니면 성도 모두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것이다. 이런 설교는 풍요 가운데 말씀의 기근을 가져 와 성도를 영적 아사지경(餓死地境)으로 내몬다.

 연설 같은 설교
우리가 신학교를 다니면서 소위 설교학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그 설교학이라는 과목이 얼마나 엉성하고 배울게 없는지------ 그것을 배웠다고 해서 설교에 대하여 달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설교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병아리 목사들은 대게 설교를 연설하는 것처럼 한다. 연설 같은 설교는 우리가 교회에 가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설교를 말한다. 평소에 쓰지 않는 이상한 목소리, 평소의 대화와 다른 높은 말소리, 일상 생활에서 쓰지 않는 언어들과 표현 방법, 얼굴 표정, 몸놀림이 동원되는 그런 설교를 말한다. 그야 말로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서 소리를 지르고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모습으로 줄줄이 연설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거 철에 유세(遊說)하는 후보자들이 연설하듯 하는 설교를 말한다.
강남의 어떤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는 아주 맹랑한 교육을 한 일이 있었다. 부흥사가 되기 위한 교육이다. 교육 과목 가운데 부흥사 목소리 만들기가 있었는데 그게 좋은 목소리를 쇳소리가 나게 만들어 듣기 거북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목사의 목소리가 쇳소리가 나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하고 설교를 힘있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데 여기서는 아에 그렇게 목소리를 망가뜨리고 새롭게 만들어 성도들을 기만하는 짓을 했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목사들이 변질된 듣기 싫은 목소리를 얻어 얼마나 부흥사로 태여 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모조품 부흥사가 우리 한국 교회에 활개를 친다면 우리 목사들은 점점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일상 생활과 다른 목소리와 표현들과 몸놀림은 듣는 성도들에게 설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없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어 설교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조바심을 일으킨다.  
주님의 설교를 자세히 연구해 보라. 그야말로 주님은 연설이 아닌 설교를 하시지 않는가? 늘 하는 일상 대화를 연구해 보라.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일대일의 대화를 하는 것처럼 설교를 하라. 대화 식 설교는 배워야 한다. 한경직, 곽선희, 옥한흠, 김삼환 목사님들의 설교를 참고하라. 그 분들의 설교를 모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분들의 설교와 여러분의 설교 차이를 모르겠거든 여러분의 설교를 녹음하거나 녹화해서 비교 해 보라. 그러면 확연히 구별이 될 것이다. 무엇이 대화 설교 인줄 모르겠거든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목사가 나와 설교하는 장면을 탤런트가 연기하는데 그 때 그들의 말하는 것을 자세히 보고 들으면 대화식 설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글은 잘하는 설교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긴 설교.
설교를 길게 하지 말라. 20분 내지 25분 정도면 족하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 은혜를 받게 할 것인가?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라고 한다. 20분이 지나면 말이 청취되지 못하고 귓전을 때리며 흘러 버린다고 한다. 60-70년대는 설교를 길게 했다. 친구 목사는 부흥회를 가서 10시부터 시작한 낮 성경 공부를 오후 4시까지 계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이미 옛 날 이야기다.
문제는 이렇게 인색하고 짧은 시간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가 되도록 설교하는가 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 대한 설명을 이곳에서 다 할 수 없어 따로 설교 잘하기에서 말하겠다. 좋은 설교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즉 감동과 감화력을 가진 설교를 말한다. 나는 일반 대중 가요를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에서 설교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은 3-5분 동안 노래를 부르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 얼굴과 온 몸에 땀이 난다. 그렇다고 그들이 땀이 날 정도로 큰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청소년들은 혼절하기도 하고 어른들은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번만 들은 노래가 아니고 수 없이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노래지만 가수들이 부를 때는 감동되어 울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면 장난이 되고 만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길까? 목소리가 좋아서인가?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노래를 부르는 그들이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수 천번 노래 연습을 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모든 인격과 영혼의 힘을 불어넣어 부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으로 감동을 주지 못하면 유명한 가수가 될 수 없고 성공할 수가 없다. 3-5분 동안 사람이 듣고 즐거워하는 노래를 부르는데도 이토록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이는데, 하물며 죄인을 살린다는 목사들이 20-25분 동안 죽은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분명 이는 이사야가 말한 '개는 개로되 짖지 아니하는 개'와 같을 것이다.(사 56:10)
이 글은 읽는 목사들이 설교를 아주 잘해서 사람들을 변화하게 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으면 그 교회가 이층이던 지하실이던, 임대 교회든 성전을 가진 교회든, 크던 작던 가리지 않고 그 교회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암사동에 있는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 아주 잘 생긴 목사가 상가를 분양 받아 교회를 개척하고 5,000만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잘했다. 누구든지 그 교회를 처음 나왔을 때는 놀라면서 마음 들어 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린 후에는 다시 그 교회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그 교회는 개척한 후 2년이 넘었는데도 의자가 텅텅 비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목사가 성도들이 듣기 싫은 설교만 골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처럼 하루 종일 설교해도 들을 만한 설교를 할 수 없거든 설교를 길게 하지 말라.

 주제가 많은 설교.
목사들은 설교에 욕심을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되 많은 것을 충분히 잘 전하려 한다. 이런 생각은 매우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설교에 주제를 몇 개씩 설정하고 설교하면 듣는 사람이 혼란스러워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머리 아파한다. 목사가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한 복음 3:16절에는 성경 말씀의 모든 중요한 진리가 함께 들어 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신론이고, '세상을'하는 말씀은 인죄론이며,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은 기독론이다.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라는 말씀은 교회론 이며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구원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신론도 기독론도 얼마나 그 범위가 넓고 그 진리가 심오한가. 그런데 목사가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선택해서 설교를 할 때 모든 것을 다 말하려 하면 정말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 말씀에서 한가지만 설명하고 설교하기도 사실 쉽지 않다. Reuel L. Howe는 수백 개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성도들과의 토의를 거친 뒤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회중 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목사가 설교에 너무 많은 사상을 포함시키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많은 사상들이 너무 복잡해서 자신들의 삶과 의미 있는 연결을 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라고 했다.
설교의 주제는 한가지만 해야 한다. 두 가지도 많고, 세 가지는 혼란하며, 네 가지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가지도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머리가 아파 다시는 설교들을 생각을 못하게 한다. 

 대지와 소지가 많은 설교.
20-25분 동안 설교를 하는데 대지와 소지가 많으면 아주 혼란스러워진다. 설교하는 목사는 설교를 질서 있고 알아듣게 하기 위해 대지와 소지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설교의 대지와 소지는 원고에만 있어야 한다. 첫째, 둘째, 둘째의 첫째 소지는 ---. 이렇게 설교하면 듣는 사람은 설교 내용 보다 대지와 소지의 숫자를 세는데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할 때는 대지, 소지를 말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설교를 해서 앞뒤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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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6-21 (월)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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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8038    
중국인의 기질과 특성
Ⅰ. 서론

1. 발표목적


중국인의 보편적 특성과 함께 지역적 특성을 분석하고 우리나라와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관계속에서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연계해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중국인의 보편적 특성


 

1)만만디:오랜 봉건사회의 악습과 관료주의까지 겹쳐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몹시 힘겨워 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무슨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이 혼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중첩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고 심사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뒤 연대책임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이 확보되었을 때 결정을 하고자 한다.


 

2)금전중시:금전에 대한 정확성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배금주의 사상이 만연해있다.


 

3)체면중시:중국은 周, 春秋戰國時代를 통해 명분중심사상과 체면중심사상이 발생되어 있다. 만년 가까이 되는 역사 속에서 覇權을 지키려는 군주들과 무인들에 의해서 천자의 수호(守護)라는 명분을 외치면서 체면을 중시하는 사상이 발생. -우리 나라와의 차이점- 한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반면 자국의 우월주의 및 자존심이 강하지 않는 반면 중국인은 "中國" 이라는 우월주의와 자존심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님.)


 

4)화합중시:중국인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목표는 화합(조화, 융화)에 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사람과의 화합을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억제시킨다. 이는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대가족제도하에서 생겨난 것이다.

5)관계중시:옛부터 중국은 무수히 많은 외국세력에게 침략당해왔다. 바로 이 요인이 관계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계기가 되어 온 것이다. 비슷한 외모만으로 같은 정신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마저 이 관계 앞에선 무의미해진다.


 

6)현세주의적 경향:세상 모든 일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근대 서양에서 취하는 태도와는 달리 편의주의적이며 실용적이다.


 

7)신의중시: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반면, 가족과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진 친구와 신뢰하는 동료에 대해서는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두터운 신뢰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Ⅱ. 본론


중국은 국토가 워낙 넓어 지역마다 중국인의 특징이 다르다. 중국의 남방과 북방이 틀리고 내륙과 해안지역이 틀리다.
북방 사람은 보통 무예에 능하고, 성격이 거칠고, 소탈하며 의협심이 강하다. 그러나 남방 사람은 영리하고 섬세하며 부드럽고 재치가 있다.

 

황하 이북의 북방 지역은 중화 민족의 발원지로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전통적 사상이 강해서 문화적 우월감이 있다. 그러나 토지와 기후는 상당히 불리하다. 이곳의 토지는 상대적으로 척박하고 수자원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형편은 상대적으로 어렵고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 수준도 남방에 비하여 뒤떨어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지나치게 침착한 반면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남방은 개발의 시점이 북방보다 늦었지만, 지리와 기후조건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생산물이 매우 풍부하고 수상 운수도 편리하여 상업발전 정도가 비교적 높으며 문화수준도 앞서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남방 사람은 비교적 열정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하며, 삶에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연해지방은 비교적 일찍 근대문명과 접하였기 때문에 해외 무역도 일찍 시작되었다. 그래서 연해 지방의 중국인은 내륙의 중국인에 비하여 안목이 넓고 마음 씀씀이가 크며 상업적 재능과 모험정신도 특출하다. 본질적으로 북부 중국인들은 정복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고, 남부 중국인들은 장사꾼 기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역대 왕조를 세운 사람들이 대부분 북부 중국인들이고, 남부 중국의 양자강 출신 가운데는 왕조를 세운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1. 화북지방 사람의 특성

 

북경


6백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로서의 역사를 갖고 있는 북경인은 대인관계로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하다. 특히 권력욕, 명예욕이 강하지만 예의도 바른편이다. 상업상의 경우에는 연줄이나 위로부터의 압력이 작용해야 일이 잘 진척되기도 한다.

말하는 속도가 느리고 내용상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많다.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고 수수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며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 의리를 중시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특히 성실하고, 매우 현실적이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현실적인 감각에서 고민한다.

군자와 같은 성의를 가지고 서로 교제하고 사람을 속인다거나 아부하는 태도를 경멸한다. 북경에는 소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예를 들면 상점이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파는 값을 적절하게 매기고 지나치게 비싸게 부르지 않는다. 시장 가격은 비교적 어느 곳이나 일정하다. 또한 북경인은 근면하고 용감하고 고생스러운 것을 겁내지 않고 역경에 강하다. 우공이산이라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선조의 상무정신의 위풍을 이어 받아 악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북경인이 정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몸에 늠름한 정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데 있어 북경인은 기율이 엄하고 공정무사하며 길게 끌거나 하지 않고, 뒤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집단이나 주변에 해를 끼치는 일이나 사람을 만나면 개인적 안면에 관계없이 용감하게 투쟁한다. 일상생활에서 북경인은 솔직 담백하여 무슨 일이 있으면 그대로 말해 버린다. 북경인은 사람과의 교제에서 우정을 가장 중시한다. 깊은 우정을 나누고 마음이 통하면 기분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친구교제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가 편안하도록 배려한다. 고락을 같이 해야 진정한 친구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봉건적인 대가족제도에서 퍼져나간 가장의식은 북경시민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하나가 노인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일체 배제되므로, 청년이 성공하려면 세월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나이를 먹고 경력을 쌓아야 한다.

元代부터 북경은 황제가 있는 수도로서 등급과 어법 예절을 중시하였고 외성으로 부터의 조공으로 살았으며, 직접 생산과 상업에 종사하지 않아 여유시간이 많다. 중국의 수도이므로 문화수준이 비교적 높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러나 가급적 정치적인 문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북경인은 체면과 자존심을 중시하여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자신의 체면도 세우려고 하므로 대화 전에 상대방의 장점을 파악하여 두는 것이 좋다. 또 현지 실정을 파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의 지나친 약속은 삼가야 한다. 북경인은 직접 접촉보다는 간접 접촉을 좋아하며 현지 로비스트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2. 동북지방 사람의 특성

 

동북

동북인이란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의 동북3성의 사람들을 말한다. 친구가 되려면 술을 같이 마셔야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 65도 이상의 독주를 단숨에 건배하는 거다. 이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남자 허리에는 표주박, 여자허리에는 담뱃대라는 얘기가 전해 온다. 상담이나 교섭보다는 우선 친구가 되는 일이 중요하며 일단 친구가 되면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정도의 의협심을 보이기도 한다.

동북지방은 온대지방 북쬭에 위치하고 극지의 습하고 찬 공기 시베리아 대고원에서 세차게 남하하지만 흥안령 산백 이북에서 가로막힌다. 동북지방의 남쪽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구릉과 평원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랭한 기후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동북인은 채집과 수렵활동에만 종사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크고 건장한 신체, 침묵과언,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 곤란과 충격의 극복, 각종 외적 특징와 성격적 특징을 형성했다.

동북지방은 사계절의 변화가 극심하고 지형의 변화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환경은 동북인의 다양한 인종적 기질, 성격, 외모 등을 형성했다. 동북지방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를 받았다. 하얼빈은 제정러시아, 장춘과 심양은 일본의 통치를 받았으므로 그 도시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의 이미지도 다르다.

 

해안과 평원에서 생활하는 요녕인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개혁개방의 진전도 빠르다. 반면 대부분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는 길림인은 사고방식도 퐤쇄적이며 경계가 명확하고 자신을 위주로 하는 특징이 현저하다. 평원과 산악이 혼재된 곳에서 생활하는 흑룡강인들은 사고 방식이 반개방형이다. 개혁개방의 속도도 길림인보다 약간 빠르다. 예를 들어 흑룡강성 북쪽에 있는 도시 흑하나 흑룡강성 동쪽에 있는 도시 수분하의 발전은 길림성의 북쬭 도시 훈춘보다 빠르다. 흑룡강인은 국가의 정책을 잘 연구하여 현실과 결합시켜 효과적인 대책을 제정하는 반면 길림인은 창조정신이 부족하고 그저 성실하게 집행하거나 중앙정부에서 명령이 시달되지 않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거나 감히 하려들지 않는다. 또한 동북의 요녕, 길림, 흑룡강인들은 인상이 다르다. 하얼빈인들은 건강한 체격에 그 어떤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상을 지닌다. 심양인은 균형이 잘잡혀 있는 체형에 목이 좀 길다. 장춘인은 사납고 우둔한 모습이다. 이러한 차이점이 있지만 동북인은 호방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순박하고 솔직한 성격을 지닌다. 동북인을 자세히 보면 남자는 싸움을 잘하고 여자는 욕을 잘한다. 아무에게나 욕을 잘 하는 것은 산동인의 특징이었는데 산동인이 동북지역에 유입되면서 그들만의 특색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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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
만주족과 한족을 구분 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만주족의 일반적인 특징은 퉁구스(Tungus)형과 유사하다. 여자들은 농사일에 부지런하며 개방적이다. 또 재주가 많고 일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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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
성격이 호방하고 거칠지만 순박한 면이 있다. 그들은 손님을 매우 반가이 맞는다. 성격이 직선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며 싸움도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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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
흑룡강 사람과 유사하다. 성격이 직선적이고 호방하며 순박하다.


 

3. 화동지방 사람의 특성

 

상해

장강의 하구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의 사람들을 포괄하는데 얼굴은 가늘고 길면서 둥근 형이다. 항구라는 특성 때문에 일찍부터 개방되어 국제도시로 발전해 왔으며 개방적이고 서구화 경향이 짙다. 내용보다는 외견을 더 중시하여 외모, 치장 등에 신경을 쓰지만 선견성이 뛰어나며 실천력이 있어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지역감정이 강하고, 인색하고 속이 좁은 것도 특징이다. 장사를 아주 잘하며 두뇌회전이 아주 빠르다. 외국인이 상해인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상해인은 경제적인 면에 밝은 경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업적 성격 때문에 지위가 낮고 가난한 사람은 경시하고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매우 정중하게 대하는 면이 있다. 상해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아주 강하며 문화, 교육 수준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상하이 사람들의 기질은 한 마디로 말해 실용적이다.

"세상 이치에 매우 밝고(精明世故) , 처세에 매끄러우면서 여러 얼굴을 지녔으며(圓滑多面) , 사소한 것까지 따지는(斤斤計較) " 타입이다. 베이징 사람들이 돈보다는 정치적 사안에 관심을 많이 두는 데 비해 상하이 사람들은 "귀족이 되는 꿈보다는 부자가 되는 꿈을 꾸고 싶다" 는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이해타산에 밝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찾아다닌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상하이 사람들의 길거리 행보는 "당마루(蕩馬路) " 라고 한다. 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어디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웃기웃하며 다니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비해 베이징 사람들의 산보는 "류다(溜達) " 라고 하는데,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하고 호수나 공원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걸어다니는 게 차이다. 상하이권 사람들의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이는 과도할 정도의 현실집착은 가끔 비판대에 오르내린다. 이른바 "상하이 도시병" 이다. 우선 상하이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돈 벌기에 매달린다.


 

산동
산동을 중심으로 한 황하 유역의 평야에 사는 사람들로 체형이 크고 성격이 순박, 단순한 편이다. 관용적이어서 남의 잘못을 잘 이해해 주는 편이지만 정의감과 단결심이 강하고 대담한 면이 있는 관계로 무인으로서의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중국 역사상 많은 의적들이 이 지역에서 나왔다. 청조 말기 의화단의 발원지이며 소설[수호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신용을 중시하여 처음에는 타인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친하게 되면 마음속의 얘기를 털어놓는 호탕한 기질이다. 남방사람에 비하면 피부가 약간 검고 눈이 크며, 상업보다는 농경업, 공업, 운송업에 더 관심이 많다. 비록 기민성은 부족하지만, 그들보다 훌륭한 철도 노동자와 광산 노동자는 찾아볼 수 없다. 상업에 능하지 못하지만 물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그들은 재치 있고 선량하며 직선적이다.


 

4. 화남 사람의 특성

 

광동

광동성에는 언어, 피부색, 생김새, 사회적 지위가 서로 다른 많은 종족들이 뒤섞여 있다. 그들에게는 민족적인 활력이 넘쳐흐른다. 네모난 얼굴에 둥근 코, 짙은 눈썹, 약간 얕은 입술이 외형적 특징이며 인내와 끈기가 강하고 사내답게 먹고 일하며 진취적이고 태평스럽다. 또한 그들은 돈을 헤프게 쓰고 싸움을 좋아하며, 모험을 좋아하고 성질이 급하다. 먹는 것은 광주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특히 그들은 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이것은 남부 중국에 나라를 세웠던 고대 중국인들의 피가 많이 섞여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광주와 그 부근에 있는 개화(開化)종족은 지능, 기업정신, 미술 등의 면에서 기타 중국인보다 우월하다. 그들이 만든 공업제품은 수백 년 전에 벌써 유럽에 까지 전해졌다. 광동 사람들은 총명하고 계산이 빠르며 장사에 일가견이 있다. 그러나 신용은 다른 지역보다는 떨어지는 편이어서 이들과의 거래에는 재확인이 필요하다. 광동인들은 싱가포르에 많이 진출해 상권을 잡고 있다.

결론


 

어느 민족이나 자신들의 독특한 성격이나 습관을 형성해가는 데 지형과 기후가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정한 역사와 문화가 오랜 세월 동안 작용하여 민족성을 구축해온 것이다. 좀더 세분한다면 한 국가나 민족 내부에서도 지역에 따른 특성이나 기질이 존재할 것이다. 중국은 5천년이 넘는 역사와 우리 나라의 약 50배에 달하는 면적을 지닌 국가이다. 중국은 지역별 격차가 너무나 크다. 사막지대도 있고, 4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도 있고, 초원지대, 평야지대 등이 공존하고 있다. 기후와 지형의 격차도 크고, 역사적 경험도 다르고,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이나 기질도 다르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선은 상대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교류가 활발한 때에는 더욱더 중국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인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필수적이다. 국제관계도 개인관계의 연장에 다름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더 냉혹할 뿐이다. 이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남을 모른다면 그것은 곧 나의 손해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인을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연계시켜 이해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처/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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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3-07 (일)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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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5177    
중국인이 미움받는 7가지 이유
중국인이 본 중국인 분석-중국인이 미움받는 7가지 이유

대만사학자 황문웅

1. 자기중심(자기 이외는 인간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인에게는 이 자기중심이 국민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규모로 확대되어 자국중심주의가 된다. "중국"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 결정적 증거이다.
객관적으로 봐서 이 둥근 지구에 중심이되는 지점이 있을 리가 없다. 천하(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는 "중국"은 지리상의 중심점이 아니라 정신적인 중심을 가르킨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이 세계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라는 강한 망상인 것이다. 이 정신적인 중심의식으로 부터 나온 것이 중화문명 지상주의이다.
중화문화가 가장 뛰어나며 주변에 그것을 전하여 그 은혜를 전파하고 있다고 하는 동심원적인 관념이 중화사상의 기본적 정신적 구조이다.
중국인은 옛부터 주변국을 경시해왔다. 이 관점은 그들의 문화가 다른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우월의식은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 그 이상이다.
그 증거로 중국인이외는 모두 짐승으로 여기어 주변 민족 이름엔 짐승 수자나 벌레 충자를 넣어서 불렀다.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은 한유는 저서 원인에서 夷狄를 반인반수로 말하고 있으며 짐승보다는 조금 진화된 존재로 평하였다.

서양제국이 청국에 대하여 통상요구를 할 때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굴욕적인 三脆九叩의 예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아편전쟁종결후인 1842년 외국인을夷狄로 여기는 청국에 대하여 영국은 남경조약제17조에서 일부러 영국을 "英夷"라 부르지 말것이라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청나라가 계속 그것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천진조약체결시 제차 문서화하였다.
청조 말기에 중국인과 접촉한 외국인은 대부분 그 오만함에 질려서 영국통상 특사로 북경에 파견된 매커토니는 거꾸로 중국인을 반야만인이라 불렀다.
영국의 홍콩총독 데비스는 중국문명을 반문명으로 칭하였고 초대총세무서장 레이 에이르러서는 아시아의 야만인으로 불르며 경명하였다. 이 정도가 되면 영국인과 중국인의 에고이즘 경쟁이다.

2. 지멋대로 주의
자기중심인 사람은 자기 멋대로 행동을 한다. 따라서 이 지멋대로주의가 그 사람에겐 보편적인 것이 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생각은 다음 다음의 다음 정도로 애초에 고려사항이 아니다.
정치의 흐름을 보아도 1950년도에는 소련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6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 수정주의 반대, 소련 사회주의타도의 슬로건을 제창하여 돌변하였다.
그리고 60년대 미일안보 및 미제국주의 반대를 내걸고 구 일본의 사회당 및 공산당과 공동성명까지 발표해놓고 70년대에 들자 어느날 갑자기 미일안보찬성, 반소친미로 급변하였다.

3. 독선
중국인의 독선적 사고 방식은 세계각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옛서독과 덴마크에서 티벳의 인권침해문제를 논의하는 의회에 압력을 넣어 그것을 결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또 강택민주석은 스위스에서 데모행렬에 조우했을 때 환영으로 나온 스위스 국가원수에 대해 자국 관리도 못하냐는 무례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간섭을 한다.
이등휘 대만 총통이 자기 모교인 코넬대학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했을 때 미상하원은 이씨의 방미를 찬성하는 결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결의에 대하여 잘못된 결의라고 반성을 촉구하였다.
일당 독재, 전체주의국가인 중국에선 그렇지 않지만 미국의 건국이념은 민주주의이다.
의회는 민의를 대변하고 어떤 결의사항도 민의를 대변함에는 틀림이 없다. 의회의 결정은 대통령조차도 무시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강택민은 모르고 있다. 미국의회에 대한 반성요구는 중화사상의 노골적 표현인 것이다.

4.책임전가
나쁜 것은 전부 남이고 성과는 자기 때문이라는 책임전가와 독선의식이 중화사상의 뼈대이다. 나는 대만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에는 근대 중국이 빈곤했던 것은 열강의 침략과 청조의 부패, 군벌들의 내전에 원인이 있었다고 배웠다.
중공에서는 그것이 모두다 국민당정부의 책임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문화혁명이 끝나자 동란의 10년의 책임은 전부 4인조의 몫이 되고 모택동의 잘못엔 전혀 언급 없이 그와 같은 대혼란의 책임을 전부 4명의 정치지도자에 전가시켰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중국인의 파렴치한 무책임의식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혁개방정책이 되자 급격한 경제개발로 강도살인, 도박, 마약밀매, 매춘, 인신매매, 사기 등등 6해, 7해등으로 불리는 흉악범죄가 횡횡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무질서는 중국의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국민성의 부활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정신오염이라고 칭하여, 사회주의 신문명을 창조하라고 당대회 등에서는 결의하고 있다.
서구문명의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 후의 중국인의 불행, 낙후는 모두 서구열강 탓이 되었다.
근대 중국은 몰락은 아편전쟁이후 모두 열강의 침략의 결과로 귀속되어, 중국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는 일이 없다. 이런 책임전가는 중국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고착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5. 인간불신(둘이 우물을 들여다보지 말라)
중국인은 국가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도 사람도 신용하지 않는다. 자기 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이나 형제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이다. 모택동의 극좌정책 시대에는 부모보다 주석님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는 말이 중국사회에서 유행하였다.
당시는 가족조차도 계급의 적으로 간주되어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劉少奇,林彪 등은 정적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밀고 당해 한 사람은 옥사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도망가는 도중에 죽었다.
중국 속담에 둘이 같이 우물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둘이 같이 들여다보면 상대방이 우물 안으로 빠뜨릴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불신 사회에서는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이 발달하게 된다.
손자는 전쟁은 사기이다고 해석하였다.
중국인 기질의 최대 특색은 이 사기에 있다. 중국인은 사기의 국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남에게 속지말라고 교육하며 항상 그것을 상기시킨다.
세계도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가짜 상품들이다. 지적소유권의 도난은 별도로, 약, 담배, 술, 식품 등 잘못하면 사람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는 물건들의 불량복제품들이 넘쳐나며 중국정부는 打假運動이라하여 이에 대해 대대적 단속을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현재의 중국은 공금횡령, 사기, 부정부패의 천국이며 가짜 상품의 천국이다.
이런 거짓이 판을 치는 인간불신의 사회에서 중국인은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서로 속이고 있다. 정부는 매스컴을 통하여 국민을 속이고 민중은 온갖 거짓말로 국가예산을 타먹는다. 중국사회에서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가짜가 범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6. 도적국가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는 중국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범죄의 반수 이상이 중국인에 의한 것이다.
어떤 자위대 대원은 일본 경찰서에 수용된 중국인에 제공하는 식사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지적하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대도시가 중국인 밀입국자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시베리아에서도 중국인밀입국자는 연간 50만명에 이른다는 믿기지 않는 데이터도 있다.
중국인이 해외에 유출되면 그들이 모인 곳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대만에서의 생활환경의 변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만에서는 2차대전 이전에는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여도 물건이 도둑 맞는 일이 없었다.
일본인이 물러가고 대륙으로부터 200만명의 중국인이 유입되자 대만은 금새 도둑놈의 나라가 되었다.
도둑이 많기 때문에 초고층빌딩의 최상층도 자물쇠를 굳게 잠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중국본토인을 보면 도둑이라 생각하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94년에 중국의 소주의 호수에서 대만관광객 24명을 태운 유람선이 호수에서 강도를 만나 전원 선실이 갇혀서 강도에 의해 태워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만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 때 중국정부는 이 사건이 강도살인 사건임을 계속 은폐하였다. 이등휘총통은 격노하여 중국을 도적국가라고 비난하였다.

중국이 도적국가임은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청나라 때 영국통상대표 매카토니는 중국엔 거지와 도적만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하였다.
중화민국초기에는 도적이 없는 산과 호수는 없다고 말하여질 정도로 그 수는 약 2000만명, 군인보다 많았다. 당시의 상해나 만주의 공공버스에는 무장병사가 항상 두명 동승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 여러 곳에서는 차량도둑에 주의하는 간판이 여기저기 걸려져 있으며 도적때 들과의 총격전으로 순직한 경찰은 매년 2000명이 넘는다.
왜 그렇게 도둑들이 많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전통문화인 것이다. 왕조말기에는 생활수단을 잃어버린 백성이 도적때가 되어 그것이 역성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성혁명은 바로 도적을 정당화하는 중국의 역사적 원리이기도 하다.
티벳 문제에 관하여서도 대만에 대하여서도 이 강탈행위를 정당화 하여 주변국가들과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급증하는 밀입국자로 인하여 중국인 범죄가 세계에 퍼짐에 따라 옛날 백인들이 두려워했던 황화론이 "화화론"이 되어 더욱더 혐중감정이 증폭되어질 것이다.

7. 위험한 "우호"
친선, 호의를 의미하는 우호라는 말은 본래 좋은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우호는 약간 다르다.
중국을 상대하는 나라에 대해서 중국이 강조하는 우호처럼 희한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호의 해석권이 전적으로 중국 측에 있어서 중국이 정한 우호에 범주에 얌전하게 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호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은 역사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소, 중인도, 중월 전쟁이 일어 났을 때를 보면 모두 양국관계가 밀월 관계의 절정에 있을 때였다. 중국과의 우호는 그들이 정한 독선적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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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1-15 (목) 13:32
홈페이지 http://www.chinam.org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10781    
중국인을 이해하는 열가지 핵심
중국인을 이해하는 열가지 核心



중국인은 한마디로 대륙적이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특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또 의외로 축소지향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과연 중국인은 누구인가 ? 그들의 참모습을 속속들이 파헤쳐본다.



1. 만만디(慢慢的)

중국사람을 두고 흔히들 「만만디(慢慢的)」라고 부른다. 「느릿느릿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사람」하면 먼저 「느리다」는 느낌부터 드는게 사실이다.

약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모 일간지의 기자가 쓴 기행문을 읽었는데 중국사람들은 워낙 느려서 소나기를 만나도 뛰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중국사람들이 느리기는 해도 그 정도로 느리지는 않았다. 그들도 비가 오자 뛰었다. 아마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인들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여유를 시간과 공간 두 분야로 나눈다면 만만디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

중국은 넓다.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의 약 44배나 되는 땅이다. 넓은 땅에 살다 보니 자연히 국민성도 영향을 받게 되어 서두르지 않는다. 또 서둘러서 될 일도 없다.

옛날에는 인간관계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동네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졌으며 기껏해야 이웃 동네 밖을 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의 행동반경이었다. 그들에게 백리 길을 간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인공위성을 타고 달라나를 다녀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쓰촨(四川)성에 사는 사람은 평생을 걸어도 바다를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은 모두가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 출신들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만주벌판이라고 알려져 있는 동북(東北)평원에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산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중국에서도 쓰촨의 나뭇꾼은 여유만만하기로 유명하다. 나무를 해서 살아가는데 우리처럼 시장에 지고 가서 파는게 아니라 아예 땟목으로 만들어서 양쯔(揚子<양자>)강을 타고 상하이(上海<상해>)까지 내려가면서 판다. 무려 5천KM의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한 반년쯤 나무를 해서 땟목을 만들며 아예 땟목위에다 집을 짓고 채소까지 심는다. 그뿐인가 ? 닭과 오리도 몇마리 실으면 병아리를 까고, 병아리가 다시 병아리를 깐다. 이 때가 되면 땟목도 얼마 남지 않고, 닭만 잔뜩 불어나 있다. 상하이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한번의 장정에 족히 3년은 걸린다. 쓰촨의 나뭇꾼이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

그래서 「천천히」라는 말은 거의 일상용어가 되어 있다. 여간해서 서두른다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가 「만쪼우」(慢走<만주>: 천천히 가세요)이며, 식당에서 요리를 내오면서 하는 말이 「만만츠」(慢慢吃<만만흘>: 천천히 드세요)다. 어쩌다 부탁받은 일을 약속날짜까지 못했으면 상대방은 대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이 꽌시! 만만라이」(沒關係 慢慢來<몰관계, 만만래>: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물론 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서두르기도 한다. 그때 쓰는 말이 「마샹」(馬上<마상>: 측시)이다. 우리말로 「즉시」이기는 하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옛날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馬<마>)이었다. 「마샹」은 지금 출발하기 위해 말 안장 위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 더날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빨리 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샹」도 우리가 보기에는「한참 뒤」쯤이 된다.



2. 차 뿌 뚜어 (差不多<차부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그 대표적인 말이 바로 「차뿌뚜어」(差不多<차부다>)다. 아마 그들의 일상용어에서 이 말만큼 자주 사용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말 뜻은 글자 그대로 「차이가 많지 않다」, 「별 차이 없다」다. 좀더 쉽게 표현한다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면을 말하는데 바로 중국사람들의 애매모호한 국민성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사실 중국사람들의 특징이 행동에서 「만만디」라도 한다면 思考(사고)에서는 「차뿌뚜어」다. 무엇을 평가하거나 어떤 상태, 또는 기분을 나타낼 때 그들은 구체적이고 간단명료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포괄적이다. 이것을 모를 때 당황하는 수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미술작품을 두고 어떠냐고 물었을 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을 때 그들은 「차뿌뚜어」라고 말한다. 지금 배가 고프냐고 물었을 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면 그것은 고프기도 하고 안고프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업하는 사람보고 『요즘 재미가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거의가 「차뿌뚜어」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도「차뿌뚜어」라고 말한다.

필자가 국립대만사범대학 석사반을 다닐 때 中國詩學(중국시학)이라는 강좌가 있었다. 할아버지 교수가 강의를 맡고 계셨는데 메주 七言律詩(칠언율시) 한 수를 지어오는 것이 과제 였다. 강의 시작 전에 평가를 받는데, 한참 훑어보시더니 하신다는 말씀이 「차뿌뚜어」였다. 「보통」이라는 뜻이다. 이러다보니「차뿌뚜어」는 듣는 사람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다. 특히 분명한 대답을 원하는 서양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국민성을 알고 나면 그것처럼 편리한 단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의 경우에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았을 때 가장 무난하고 훌륭한 대답은 「차뿌뚜어」이기 때문이다.

『오늘 식사 어땠습니까』

『요즘 어떠세요』

『지금 가면 안 늦을까요』

『비싸지 않던가요』

『힘들었지요』

『일주일이면 되겠습니까』

『조금만 더 해 주세요』

중국사람들이 「차뿌뚜어」를 워낙 즐겨 사용하다 보니 유명한 후스(胡適<호적>)가 이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差不多先生<차불다선생>」은 따지기를 싫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늘 말한다.

『세상만사란 차뿌두어면 돼, 뭘 그리 따지고 산단 말인가』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별 차이가 없었다. 「十<십>」자와 「天<천>」자는 한 획 차이뿐이므로 마구 섞어서 썼으며, 흰 설탕과 누런 설탕은 다같은 설탕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한번은 上海히(상해)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기차는 8시 30분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분이 늦었기 때문에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는 단2분을 기다려주지 않고 정시에 출발한 기관사를 이해할수 없었다.

『젠장, 30분이나 32분이나 차뿌뚜어인데, 내일 가지 뭐. 오늘 가나 내일 가나 차뿌뚜어 아닌가』

그가 급한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하인이 불러온 의사는 불행하게도 의사가 아니라 수의사였다. 그래도 그에게는 다 같은 의사였으므로 별 차이가 없었다. 결국 그는 죽게 되었다, 가뿐숨을 몰아쉬면서 말한다.

『하기야 죽는 것과 사는 것도 차뿌뚜어 아닌가』

중국 사름들의 「차뿌뚜어」정신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원만한 성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좋지 못한 평가도 있을 수 있다.



3. 메이 파쯔(沒法子<몰법자>)

살다 보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중국사람들은 「메이 파쯔」(沒法子<몰법자>)라고 한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일종의 「체념」이다. 체념 뒤의 심리상태는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나 원망,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데 대한 한탄과 후회등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어떤가. 좌절 또는 자포자기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항하는 사람은 드물다. 해봐야 도리가 없으니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참는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참는다(忍<인>)는 말을 자주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내는 신용과 함께 그들이 장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시했던 덕목 중의 하나였다.

그들의 인내력은 유구한 역사와 배경을 자랑한다. 황허(黃河<황하>)는 중국민족의 발원지이자 문명의 산실이다. 그들은 일찍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황허문명을 꽃피웠다. 따라서 중국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고향은 황허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숭상하는 색깔도 황색이다.

그러나 황허는 묘하게도 그들에게 문명과 재앙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문명이라는 화려한 선물을 준 대신 홍수라는 가혹한 대가도 요구했다. 역사상 황허는 수많은 홍수를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메이 파쯔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몰론 「참는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준 것으로 홍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이른바 人災(인재)도 있었다. 전쟁이 그것이다. 梁啓超(양계초)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평균 2년반에 1년은 전쟁기간이었다. 인생의 3분의 1이상은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야 했음을 의미한다. 전쟁 한번 겪지 않고 죽으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역사를 「도륙의 역사」리고 했으며 중국사람을 戮民(륙민)이라고 했다. 「도륙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메이 파쯔일 수밖에.

천재와 인재에 시달릴대로 시달리며 살아온 중국사람들과 교제를 하다 보면 「메이 피쯔」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상대방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우리같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역시 「메이 파쯔」일 수밖에 없다. 그 말 속에는 「방법이 없으니 참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바다. 보다 큰 목적이 있으므로 참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도 웬만한 불편이나 고통쯤은 참는 것으로 해결한다. 좀처럼 그것을 개선한다거나 불평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다. 철저한 포커 페이스인 셈이다.

외교나 상담을 할 때 중국사람을 만나면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좀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에게 감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감정이 일단 폭발할 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쉽게 흥분하고 가라 앉히는 우리와는 좀 다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나라 代宗(대종)때 차오 은(朝恩<조은>)이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세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무백관을 우습게 알았다. 한번은 천자를 모시고 강연을 벌였는데, 강연의 내용을 빗대어 평소 미워하던 대신 세 사람을 공격했다. 천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왕진(王晉<왕진>)이라는 신하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위엔 짜이(元載<원재>)라는 대신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차오 은이 중얼 거렸다.

『왜 욕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래도 위엔 짜이란 녀석이 마음에 걸리는데...?』

물론 후에 그는 위엔 짜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4. 의심과 不信<불신>

흔히들 중국사람하면 신용의 대명사쯤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다. 그들은 신용을 중시한다. 그러나 한번쯤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과연 가들은 누구나 신용을 잘 지키는 것일까. 그리고 신용을 중시하지 않는 민족도 있단 말인가.

중국은 오래 전부터 신용을 중시해왔다. 孔子(공자)도 신용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심지어 그는 정치를 하는데 있어 위정자는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하고, 군대를 가져야 하며, 신의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라고 했다.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겼던 중국 사람들이었지만 신의를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의는 孝悌忠禮義廉恥 (효제충예의염치)와 함께 인간이 지녀야할 8가지 덕목중의 하나였으며 이중 하나라도 어기는 것을 군자의 커다란 수치로 여겼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추측할 수 있다. 즉 孔子(공자)가 신의를 강조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가 그만큼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신의의 반대는 불신이며 그것은 곧 의심을 낳는다. 그래서 신용을 중시했던 만큼 의심도 그만큼 심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옛날 춘추시대 鄭(정)나라의 武公(무공)은 호시탐탐 옆에 있는 胡(호)나라를 노렸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딸을 호왕에게 시집보냈다. 호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과연 호왕은 정나라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공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한번은 무공이 여러 신하를 모아 놓고 어느 나라를 칠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꽌치쓰(關基思<관기사>)라는 충신이 호나라를 지목했다. 무왕은 사돈 나라를 어떻게 칠 수 있느나며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래서 호왕은 더욱 정나라를 믿고 안심했다. 결국 무왕은 호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역시 춘추시대 宋(송)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비가 와서 어느 부자의 담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들은 빨리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말을 옆집의 영감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밤 정말로 도둑이 들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아들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찬한 반면, 옆집 영감은 도둑으로 잔뜩 의심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은 어떤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놓으면 천재지변이 일어 쓸어가 버린다. 다행히 이를 면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면 이번에는 가혹한 관리의 수탈이 기다리고 있다. 믿을 것은 하늘도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최초로 중국의 통일한 천자는 泰始皇(태시황)이었다. 이제 중국은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위업은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피를 흘린 대가가 아니었던가. 어렵게 쥔 천하를 누군들 쉽게 내놓고 싶겠는가. 천년 만년 지키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자니 믿을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자식도 못 믿을 판이니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천자치고 높은 베개 베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신하는 어떤가. 천자의 총애를 다투다 보니 자연히 아첨과 시기가 뒤따랐다. 몰론 현명한 천자라면 시비곡직을 가릴 줄 알아야겠으나 역사상 그런 천자는 놀아나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신하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천자가 더 많았으며, 심하면 일부러 농간을 부추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하게도 했다. 그러니 신하들도 잔뜩 의심할 수 밖에.

통치자 계층에서 있었던 의심의 상징이 인질이다. 서로의 약속을 믿지 못해 사람까지 담보물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신의를 꼭 지킨 것을 결코 아니었다. 정권을 위해서는 자신의 혈육도 희생물로 삼았던 경우가 많았다.

의심 또는 불신의 극치는 뭐니뭐니 해도 宦宮(환궁)이 아닌가 싶다. 궁중에는 많은 궁녀들이 있다. 그러나 남자도 있어야 했으므로 자연히 「일(?)」이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여인들이 아름답고 보니 그런 일은 다반사였다. 그러니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건의 재방을 根絶(근절)시켜야 했는데 방법은 글자 그대로 「뿌리채 뽑아 버리는」수밖에 없었다.

앞에 든 사례들은 대부분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있다. 도장이 그것이다. 옛날 공문서를 보낼 때 문서수발병이 행여나 내용을 뜯어볼까 「의심」스러워 사용했던 것이 도장인데 요즘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같은 관습은 우리에게도 전해져, 서양사람들이 간편하게 사인을 하는 반면 우리는 반드시 도장을 찍어야 믿는다. 그것도 부족하여 인감도장이 나왔다. 모두 불신의 상징인 것이다.

비행기 기내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의 말이 생각난다.

『같은 중국사람이지만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대만 사람은 그래도 좀 단순한 반면 대륙 사람은 음흉하고, 홍콩에 있는 중국 사람들은 사기꾼이에요. 싱가포르 사람들은 훈련은 잘 되어 있지만 예리하지요』



5. 현실(실속)과 미엔쯔(面子<면자>)

중국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현실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중국인들은 콩쯔(孔子<공자>)라면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지성으로 추앙하는데 이들의 현실중시 경향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들 콩쯔는 케케묵은 문자나 즐겨 사용하며 예의니 효도니 따위의 말만 하는 「고리타분한」존재쯤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귀신이니 도깨비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하늘」이니 「죽음」까지도 논하려 들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것은 곧 「비현실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모든 것들은 현실과 밀착된 것들, 예들 들어 교욱, 부모 섬기기, 수양하기, 음악듣기, 교제하기 등등이었다.

사실이지 고리타분한 존재는 콩쯔나 멍쯔(孟子<맹자>)가 아니라 라오쯔(老子<노자>)나 쫭쯔(莊子<장자>)인 셈이다. 그들의 글을 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지 쉽게 드러난다.

『道(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북쪽 바다에 곤(鯤<곤>)이라는 물고기가 이쓴ㄴ데 그 크기는 수천리가 넘는다』

라오쯔와 쫭쯔의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 얼마나 뜬 구름잡는 소리인가?

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신화의 재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신화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으며, 또 신화를 바탕으로 발달하는 소설도 덩달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신화나 소설은 모두가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콩쯔가 배척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사람들에게는 먹는 것이야말로 「하늘」과 같은 존재였으며 모든 것은 먹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훌륭한 통지자란 민주정치를 실시했던 천자가 아니라 먹게 해줄 수 있는 천자를 말했다. 중국사람들이 역시 「하늘」처럼 떠받드는 堯(요)임금과 舜(순)임금도 민주정치를 해서가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천지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보다 堯舜(요순)임금을 훨씬 더 존경한다. 우리가 단군할아버지를 숭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 먹는 것을 완전하게 해결한 것은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의 일이므로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동안 「조용」했던 것은 이념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현실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했던 마오 쩌 뚱(毛澤東<모택둥>)의 통치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중국사람들의 현실중시경향은 쉽게 드러난다. 복잡한 형식이나 겉치레를 싫어하며 내용을 중시한다. 그들이 지내는 제사를 보면 절차가 우리보다 훨씬 단순하다.「겉보다는 실속」인 것이다. 마오 쩌 뚱이나 쪼우은라이(周恩來<주은래>), 떵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양복입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麻雀雖小(마작소소), 五臟俱全(오장구전)』(참새가 작아도 오장은 있다)

그들에게는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어떤 것이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요즘 불고 있는 이른바 「실용주의」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결코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과거 몇십년 동안 현실보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웠던 데 대한 일종의 반대용어일 뿐이다. 등소평의 실용주의노선은 드래서 보다 더 중국적인지도 모른다.

중국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중국의 성격』이라는 책을 쓴 바 있는 영국의 전도사 아담 스미스는 중국사람을 이해하는 관건으로 체면을 들었으며, 린위탕(林語堂<임어당>)같은 이는 『내 나라네 국민』(吾國與吾民<오국여오민>)에서 중국을 지배하는 세 여신으로 체면, 운명, 은전(恩典<은전>)의 여신을 들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체면의 여신이라고 했다.

중국의 문화를 주도해온 사상은 콩쯔로 대표되는 유가였다. 그런데 유가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실을 중시한다. 그래서 내세가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인데, 불교처럼 내세를 앞세우면 인심을 모을 수도 있으련만 유가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바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 육신은 죽되 정신을 죽지 않는다고 보았다.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의 이름은 물론 조상의 이름까지 드날리는 것(立身揚名<입신양명>)이야말로 효의 극치라고 했다. 명분이니 명예라는 말은 그레서 나왔다.

그런데 名(명)은 다분히 정신적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신을 나타내는 이름은 무엇일까 ? 그것은 바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얼굴이다. 곧 얼굴은 육신의 실질적인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얼굴도 명예와 함께 중시했다.

「경을 친다」는 말이 있다. 경(경<경>)이란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로 참형 다음 가는 중형이다. 평생 얼굴을 들 수 없게 하는 형벌이었던 것이다.

또 厚顔無恥(후안무치)라는 말도 있다. 얼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체면을 닦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중국에서는 그런 사람에게 얼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가했다.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얼굴은 육신의 상징으로 중시되었다. 우리나 중국이나 지금도 경찰에 체포된 범인이 얼굴부터 가리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이다.

체면을 중국어로 미엔쯔(面子<면자>)라고 한다. 곧 얼굴이라는 뜻이다. 워낙 미엔쯔를 중시했던 민족이었던 만큼 체면 때문에 죽음을 자청했던 경우도 많다. 周(주)나라가 서자 불사이군을 외치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기를 자청했던 뽀이(伯夷<백이>)와 수치(叔齊<숙제>)도 사실은 체면 때문이었으며, 료 우빵<劉邦<유방>)에게 패주를 거듭하던 샹위(項羽<항우>)도 도망치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가 있었지만 체면 때문에 烏江(오강)을 건너기를 거부하고 자결을 선택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건넌단 말인가』.

總理衙門(총리아문)이라면 청나라때 외교를 담당했던 기관으로 지금의 외무부에 해당된다. 당시는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마음껏 유린하던 때였다. 서영사름들은 걸핏하면 총리아문을 안방 드나들 듯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했다. 서양사름들이 이 곳을 출입할 때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곤 했다.

즉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들어간다. 정문은 곧 체면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사람들의 기세를 꺾어 놓는다. 그러나 나중에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 나갈 때는 슬그머니 옆문을 이용했다. 구겨진 중국사람들의 체면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체면중시 풍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체면과 관계되는 말은 무척 많다. 우선 체면 차리는 것을 쭈오 미엔쯔(做面子<주면자>),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을 께이 미엔쯔(給面子<급면자>), 제 삼자의 체면을 봐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마이 미엔쯔(賣面子<매면자>)라고 한다. 「체면을 팔았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체면이 선 상태를 요구 미엔쯔(有面子<유면자>), 깍인 상태를 메이 미엔쯔(沒面子<몰면자>),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쯩 미엔쯔(爭面子<쟁면자>), 이상의 것들은 집대성한 것을 미엔쯔 꽁푸(面子工夫<면자공부>)라고 한다. 일종을 「체면학」인 셈이다. 중국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미엔쯔 꽁푸」에 밝아야 한다.

그러면 중국사람들은 「체면」과 「현실」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가. 이 두가지는 보완적이기보다는 상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너무 체면만 차리다가는 현실의 이익을 놓치기 쉽다. 중국사람들은 양자가 상충될 때 「현실」쪽을 택한다. 즉 양자를 면밀히 검토하여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체면도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의연하게 대처해도 전후좌우를 따져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지난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사건이 발생했다. 수명의 납치범에 의해 중국의 민항기가 우리의 춘천 비행장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유사 이래 처음 경험하는 우리로서는 이 엄청난 사건에 전국이 놀랐지만 사실 우리보다 더 놀랐던 것은 중국이었다. 그들은 다급했던 나머지 민항국장 沈圖(심도) 일행의 방한을 요청해왔다. 이때 중국외교부는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를 대한만국(Repubulic of Korea)이라고 정식으로 호칭했다. 목전의 이익을 앞두고 체면을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도하 각 매스컴들은 흥분한 나머지 금방 한.중간에 무슨 변화라도 있을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이룬 것은 그로부터 만 9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6. 꽌시(關係)와 메이 꽌시(沒關係)

중국어로 관계를 「관시」關係(관계)라고 하는데, 우리의 「빽」(background)과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사람들의 관계중시는 가히 알아줄 만하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계라고 본다. 그래서 관계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을 까오 꽌시(고關係<고관계>)또는 라 꽌시(拉關係<납관계>)라고 하는데, 「관계를 얽는다」고 보면 무방하다.

이렇게 하여 관계가 얽혀진 상황이 꽌시왕(關係網<관계망>)인데, 마치 거미줄처럼 망을 형성해 두고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유사시 꽌시 왕을 동원하는 것을 카오 꽌시(고關係<고관계>), 또는 판 꽌시(攀關係<반관계>)라고 한다. 이는 「관계를 타다」, 또는 「빽을 동원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사람을 평가할 때 상대방의 능력보다는 꽌시가 우선하는 경우가 있다. 즉 그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사람인가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럴 때 그들은 「중보다 부처를 보아서」라고 표현한다. 그 사람의 빽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공부했던 대만의 경우, 입학원서에는 반드시 추천서가 필요한데 그 위력이 대단하다. 즉 든든한 인사의 추천서라면 입학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 점은 중국 대륙도 마찬가지다. 평소 잘 아는 인사 한분이 사업차 중국을 자주 왕래하게 되었다. 세관에서 검사가 워낙 까다로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높은 고관을 알고부터는 무사 통과였다는 것이다.

꽌시를 맺어 놓은 상대를 꽌시 후(關係戶<관계호>)라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꽌시 후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다음의 기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공장을 하나 새우려면 수많은 기관과 관계를 맺어 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주위의 生産隊(생산대)까지도 그렇다. 만약 그들이 열번 요구했을 때 한번이라도 거절했다가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변전소에서 어떤 요구가 들오왔다고 하자. 만약 당신이 그 요구를 거절한다면 당신은 정전을 당하고 말 것이다』(1980년 11워 15일자「人民日報(인민일보)」)

꽌시 왕 치고 좀 특수한 꽌시가 있다. 중국사람들은 인위적인 혈연관계 즉, 수양관계를 매우 좋아한다. 여기에는 수직관계와 수평관계가 있다.

수직관계에는 깐(乾<건>)이라는 말이 덧붙여지는데 그것은 「건조하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가 술좌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건배」(乾杯<건배>: 깐 빠이)라는 말은 바로 「술잔을 말린다」는 뜻으로 「잔을 비운다」는 의미다.

수직관계에서 「깐」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양 아버지면 깐빠(乾파<건파>), 어머니면 깐마(乾마<건마>), 아들을 깐 얼쯔(乾兒子<건아자>), 딸이면 깐 뉘얼(乾女兒<건여아>)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의 총리인 李鵬(이붕)이 主恩來(주은래)의 깐얼쯔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수평관계는 바로 의형제를 맺는 것이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桃園結義(도원결의)를 기억할 것이다.

일단 關係網(관계망)에 든 사람은 「내 사람」이 된다. 그래서 모든 친절을 다 베푼다. 그러나 「내 사람」이 아니면 「남」이 된다. 그들은 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이처럼 중국사람들에게는 내 사람과 남의 구별이 강하다.

중국어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메이 꽌시(沒關係<몰관계>)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괜찮다」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의 글자를 풀어 보면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나하고는 관계가 없으므로 괜찮은 것이다.

또 남의 일에 참견을 할라 치면 샤오 꽌시엔스(少關閑事<소관한사>)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괜히 쓸데 없는 일에 관계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인데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7. 중용과 조화

중국사람들은 중용을 통한 조화를 중시한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우리는 가운데를 취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중용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숫자 10을 놓고 보자. 단순히 가운데를 취한다면 5가 바로 중용의 숫자가 된다. 그러나 중용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국사람들이 배격하는 숫자가 될 수도 있다.

보다 중용에 가까운 숫자는 1과 10 두 개일 수도 있고 4,5,6이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1에서 10까지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용이란 수학적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화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쉽게 표현한다면 「모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즉 過猶不及(과유부급)의 상태가 바로 중용인 것이다.

그러면 조화는 또 무엇인가. 두 개의 극단을 동시에 취함으로써 중용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중국사람들은 극단적인 것을 싫어한다. 일도양단이라는 말은 마치 칼로 두부 모를 자르듯이 단칼에 결판내는 것을 말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극단을 배격하며, 굳이 취하라면 차라리 양단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것이 곧 조화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음양사상은 조화의 좋은 예이며 그들의 옛 건축믈을 보면 거의가 좌우대칭형이다. 어느 한 곳만을 치중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 참석해보면 중국인 특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그것을 타인과 조화시키기에 더 노력한다. 그들이 흔히 하는 속담에 「사람 보면 사람 말을, 귀신 보면 귀신 말을 한다」(見人說人語<견인설인어>, 見鬼說鬼語<견귀설귀어>)라는 말이 있다. 적응과 조화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주장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口是心非(구시심비)라고 한다. 「입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음흉한 셈인데 그들은 음흉해서 오는 폐단보다는 남과 조화하지 않은 데는 오는 불화를 더 경계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있어 조화의 대상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의술과 약학, 음식까지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보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늘 경외스러운 존재였다. 따라서 자연은 숭배와 함께 조화의 대상일 뿐이지 서양사람들처험 연구한다거나 나아가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를 자국 경내에 두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것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중국사람이 아니라 영국사람이었다. 1986년에 와서야 비로소 에베레스트에 중국인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인간과 자연간에는 엄격한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물론 主9주)는 자연이고 인간은 그 부속물에 불과하다. 이 점은 동양화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 산천등 자연은 크게 처리하고 있는 반면 인간은 늘 조그마한 한 점, 도는 한 획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것이 바로 天人合一說(천인합일설)이며 그 중의 하나가 풍수지리설이다.



8. 商人(상인)기질

흔히들 중국사람들은 장사에 뛰어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화교들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이지 그들의 장사기질은 경재대국을 이룩한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을 商人(상인)이라고 하는데 원래 뜻은 「商(상)나라 사람」이다. 商(상)나라는 우리에게 殷(은)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후에 周(주)나라에 의해 망한다. 앞서 말한 伯夷(백이) 叔薺(숙제)는 바로 상나라 말기 때의 사람이다.

武王(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새운 것은 기원전 1,111년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전답을 몰수당한 은나라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생산기반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장사로 연명해야 했다. 商人(상인)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상인의 등장은 지금부터 3천년이 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중국 사람들은 3천년 전부터 상업에 종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라면 극도의 혼란기이다. 중원은 온통 제후들의 땅 빼앗기 싸움으로 전쟁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지만 묘하게도 사상과 상업만큼은 크게 성행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諸子百家(제자백가)와 재별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정경유착은 지금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점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재벌이 출현하였으며 콩쯔같은 성인도 돈많았던 제자 쯔꽁(子貢<자공>)이 있었기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자연히 황금만능주의가 풍미했다. 당시 정치재벌의 대표는 단연 뤼 뿌 웨이(呂不韋<여불위>)를 들 수 있는데 요즘의 재벌은 땅투기를 즐겨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사람, 즉 천자의 자리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예리한 투자안목으로 쯔추(子楚<자초>)라고 하는 진나라의 왕자에게 자신의 애첩을 바쳤다. 그녀는 이미 임신중이었다. 얼마안 있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훗날의 진시황이다. 그러니까 진시황은 뤼 뿌 웨이의 아들인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은 진시황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상인, 즉 재별의 힘이 아니었을까.

중국은 땅이 넓다. 그러다 보니 장단점이 동시에 있다. 半寒帶<반한대>부터 열대까지 있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 없는 것은 좋은데 워낙 넓다 보니 이것을 각지로 실어 나르는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예로부터 없는 것(無有<무유>)이 두려운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不均<불균>)이 두렵다고 했다.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은 요즘말로 유통이며 그것을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상인이었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상업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사람들은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재능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중국대륙의 상업은 우리에게 뒤져 있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중국인들은 곰에다 비유할 수 있다. 곰은 미련한 동물같지만 물고기를 잡는 데는 수달 못지 않은 민접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곰은 훈련만 시키면 재주까지 부릴 줄아는 영특한 동물이기도 하다. 즉 곰에게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이제 각 동면에서 깨어난, 훈련을 거치지 않은 곰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이제 갓 동면에서 깨어난, 훈련을 거치지 않은 곰이다. 따뜻한 봄이 되고 정신 훈련과정을 거칠 때 그 곰은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같은 중국사람인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익히 알 수 있다.



9. 금전관과 계산감각

중국사람들의 상업기질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그들 특유의 금전관과 계산감각이다. 하기야 상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은 없다. 그러나 돈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애착은 그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예를 들어보자. 화교들은 장사에 뛰어나 돈을 많이 버는데 일단 돈이 수중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고 한다. 돈이 늘어나면 이제는 의심이 많아 방바닥을 파낸 다음 묻어둔다는 것이다. 물론 과정이 섞인 이야기겠지만 그들이 돈을 중시하는 일면을 말할 것이라 하겠다.

중국사람들이 돈을 중시하는 풍조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등교하기 전에 가게에 나가 일을 거든다. 물론 책가방은 한쪽 구석에 놓아둔 채 일을 한다. 부모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돈을 버는 것」을 중국어로 「쫜치엔」(잠錢<잠전>)이라고 하는데 대화중에 쉽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는 강의중인 교수도 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지만 점잖은 신분에 가급적이면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우리와는 다르다.

중국에서 구정만큼 큰 명절은 없다. 왁자지껄하고 요란하다. 설날에 우리들이 즐겨 하는 덕담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중국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꽁시 파 차이」(恭禧發財<공희발재>): 돈 많이 버십시오)다.

중국사람들은 수많은 신을 섬긴다. 아마도 그들만큼 다양한 신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신은 물론 땅의 신, 집의 신, 화장실 신, 대문 신, 심지어는 부뚜막의 신도 있다. 이런 형편인데 돈의 신이(錢神<전신>)이 있으며 그보다 한 수 높은 재신(財神<재신>)도 있다. 각종 재산을 담당하는 신인 셈이다.

중국인들이 돈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실 그들만큼 전쟁과 재앙을 많이 겪은 민족도 드물 것이다. 오죽했으면 량 치 차오(梁啓超<양계초>)가 戮民(육민)이라고 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국이 불안하면 금값이 폭등한다. 전쟁이든 재앙이든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금(돈)밖에 없다. 외양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돈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정확한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놀랍게도 중국인들은 계산관념에 있어서도 가히 세계 제일이다. 무려 2천6백년전부터, 그러니까 공자시대 이전부터 수학은 군자가 익혀야 할 기본과목으로 되어 있었으며, 원주율 3.14를 계산해낸 것은 무려 1천 8백여년전의 일이다.

계산을 중국어로 「쏸」(算<산>)이라고 한다. 꿍꿍이 속을 신쏸(心算<심산>)이라고 하며, 쏸러(算了<산요>) 하면 「계산이 완료된 것」으로서 관계가 끝난 상태를 말한다. 심지어 그들은 점을 보는 것도 계산하는 것으로 여겨 쏸밍(算命<산명>)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운명을 계산한다」는 뜻이 된다. 그들에게는 운명조차도 「계산」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계산하는데 필요한 주산을 쏸판(算盤<산반>)이라고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원나라 이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까 7백년은 족히 된셈이다. 계산기가 발달한 지금도 주산은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돌잔치다. 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돈과 연필, 그리고 실을 잔치상에 올리는 데에 비해 그들은 붓과 함께 주산을 올려 놓는다.



10. 거대한 스케일과 축소지향

白髮三千才(백발삼천재)」리 타이 빠이(李太白<이태백>)가 우연히 거울 앞에 섰다가 호호백발이 다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놀라 한 말이다.

옛날 楚(초)나라에는 이상한 나무가 많았다. 그중 冥靈(명영)이라고 하는 나무는 5백년을 봄, 5백년을 가을로 삼는다. 또한 大椿(대춘)이라고 하는 나무는 무려 8천년을 봄으로 삼는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에서 천지를 개벽한 사람은 판꾸(盤古<반고>)다. 그는 두 팔로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었는데 키가 하루에 한 길씩 자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1만 8천년이 지나자 그의 키도 그만큼 커졌고 덩달아 하늘도 아득히 놓아지게 되었다.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말이다.

이래저래 우리에게 중국사람들은 「거대한」사람들, 「스케일이 큰」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들의 커다란 스케일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경우는 많다. 만리장성은 동쪽 발해만의 山海關(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서쪽 감숙성의 嘉욕關(가욕관)까지 장장 6천km나 뻗어 있다. 그러므로 사실은 만오천리 장성인 셈이다. 달에서 보이는 인류의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실감난다.

북경 천안문 광장의 뒤에 위치해 있는 것이 紫禁城(자금성)이다. 明(명),淸(청) 양대 天子(천자)가 살던 살림집인 셈인데 무려 17년에 걸쳐 지었다. 둘레가 6km에 무려 9천門(문)이 넘는 방으로 되어 있다.

그들의 스케일은 토목과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永樂大典(영락대전)』이라면 명나라 成祖(성조)때 편찬된 일종의 백과사전인데 학자 2천명을 동원하여 6년동안 썼다. 총 2만2천8백77권에 3억7천만자가 수록되어 있다. 청나라 전성기 때의 천자였던 高宗<고종>(연호는 乾隆<건륭>)은 한 수 더 떠서 『四庫全書(사고전서)』를 편찬했는데 17년동안 4천2백명을 동원하여 총 17만2천6백26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했던지 도합 7질이나 만들었다. 『永樂大典(영락대전)』의 자수는 그래도 셀 수가 있었다. 그러나 『四庫全書(사고전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확한 자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세계 최대의 서적인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넓은 땅, 오랜 역사, 그리고 다영한 자연환경, 거기에다 많은 사람, 이런 것들이 중국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들이다. 인간의 성품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환경이다. 끝없는 평원, 바다같은 호수를 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은 자연히 광대무변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산의 정상에 섰을 때 가슴이 확 트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사람들의 흉금은 대체로 확대지향적이다.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거대한 스케일만 즐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그들이 국민성 중에는 축소지향의 일면도 있다. 「大中有小(대중유소), 小中有大(소중유대)」라는 말이 있다. 「큰 가운데 작은 것이 있고 작은 가운데 큰 것이 있다」해석하면 되겠다. 莊子(장자)의 구름잡는 이야기 같지만 이를 인정한다면 큰 것이 작은 것이고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라는 뜻도 된다.

다시 말해 큰 것과 작은 것에는 대소의 구별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얼마든지 작아도 그들은 크게 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옛날 한나라 때의 費長房(비장방)과 같은 도사는 호로병 속에서 새로운 천지를 맛보았으며 四川(사천) 지방의 成都(성도)에서 나는 이상한 귤속에는 두 도사가 태연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속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 실제로 작은 것은 없는가. 많다. 대만의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유물중의 하나로 橄欖劾舟(감람핵주)라는 것이다 있다. 청나라의 조각가가 올리브 열매에다 蘇東坡(소동파)가 쓴 「적벽가」를 조각한 것인데 길이 3.4cm, 높이 1.6cm 의 배모양을 하고 있다. 그 속에 여덟 사람이 앉아 있고 양쪽에 모두 8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지금도 자유롭게 열리도 닫힌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배 밑바닥에다 「적벽가」전문 3백 57자를 새겨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多層球(다층구)라는 것도 있는데 상아를 깎아 큰 공을 만든 것으로 그 공속에 도합 16개의 공이 층층이 있어 각기 따로 움직인다.

현실생활에도 작은 것은 많다. 그들의 찻잔을 보면 배갈잔만 하다. 우리의 녹차잔보다도 훨씬 더 작다. 흔히들 일본인이 「축소자향적」이라고 하지만 중국사람도 못지 않다.

일본사람들의 좁은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면 중국사람들은 도리어 넓은 공간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 일본사람들이 축소를 통한 「적응」을 추구했다면 중국사람들은 축소를 통한 「여유」를 추가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작은 것에서도 큰 세계를 느낄 줄 알았기 때문이다.



1993년 신동아 별책부록에서 발췌

鄭錫元(정석원)

漢陽大人文大副敎授.中國學術思想(한양대인문대부교수 중국학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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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11-05 (수) 10:21
분 류 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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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기질
[중국인의 기질]

●중국인은 보수적이다

외국인이 보기에 중국인은 보수적이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자기보호 행위로 볼 수 있다. 중국인은 오랫동안 봉건군주제의 엄격한 가부장제 속에서 생활하면서 개인 감정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그들은 항상 “고개 드는 새가 총 맞는다(槍打出頭鳥)”는 말을 하며 과도한 경쟁을 기피해 왔다.

그들이 즐겨하는 우스개가 있다. 어떤 사람이 “1 더하기 1은 얼마인가”라고 물었을 때 사회적 지위가 없는 사람은 “2”, 사회적 지위와 교양이 있는 사람은 “2인 것 같다.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은 틀림없이 “1 더하기 1?”이라고 중얼거리고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런 보수적 성향은 백성들이 관리들에게 어떤 일 처리를 요구할 때 관리들이 절대 앉은 자리에서 가부(可否)를 답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연구 해보자” “최대한 노력해보겠다” “정말 좋은 의견이다. 반드시 참고하겠다” 등의 모호한 대답으로 우선 넘어간다.

●지나치게 원만함을 강조하다

중국인들은 조급하게 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남들보다 튀는 것을 특히 싫어한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일을 신중히 하라고 할 때 “어른스럽게 하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모험을 즐기거나 조급해 하거나 과도한 열정으로 어떤 일을 하면 중국인들은 사회안정을 해치는 불량한 행동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고분고분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그 사회는 진취적인 정신을 잃어버린다. 과거 수천년 동안 중국은 원만함과 고분고분함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바람에 무수한 기회를 상실했다.

●남의 일에 간섭 않는다

고대 중국의 일반 백성들은 자급자족형의 소농(小農)이었다. 때문에 도시에도, 가정에도, 마음 속에도, 모두 유무형의 장벽이 있었다. 외부인은 예(禮)로 대할지라도 자신의 담장 안으로는 절대 들이지 않았다. “자기 집 앞 눈은 치우되 남의 집 기와 위 서리는 상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위에 생긴 일들을 열심히 구경하면서도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극도로 꺼린다.

중국인들은 “그런 선례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무슨 일이 생기면 법률로 완전히 해결할 수가 있지만 그들은 선례를 찾는다. 중국에는 고대 전제주의의 영향으로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법의 개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중도덕ㆍ공익은 무시되기 일쑤다.

●평화롭고 선하다

중국인들은 서로 친근하게 지내고 서로를 애호한다. 이는 유교의 ‘중용사상’과 도가의 ‘자족(自足)사상’, 묵가의 ‘경천낙명(敬天樂命·하늘을 공경하고 운명을 즐김) 사상’에 잘 표현돼 있다. 이런 사상은 농업경제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농업사회는 일단 안정이 되면 경쟁과 정복 심리가 감소한다. 만리장성도 방어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평화를 사랑할 뿐 아니라 선행을 중시한다. 그들은 늘 “선행을 쌓으면 선을 만나고 악행을 쌓으면 악을 만난다”는 말을 한다. 또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꼭 경사가 따른다”는 말도 있다. 중국인들의 이같은 생각은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과 유교의 성선설에 영향을 받았다. 중국 외교정책 중 하나인 ‘평화공존 5원칙’도 이런 기질을 반영하고 있다.

●가정을 중시한다

중국인이 중시하는 ‘가(家)’는 ‘여러 사람(大家)’ 또는 조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들은 조상과 가정을 아주 중시하기 때문에 가정의 단합을 위해 가장의 지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국가 지도자의 지위도 절대적이며 반항을 불허한다.

가장은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기 위해 인내의 기질을 습득케 한다. 또 가족들은 가장에게 영합하기 위해 ‘아무래도 좋다’는 신조에 점차 익숙해진다. 한 가정의 주인은 아버지이고 한 나라의 아버지는 군주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은 효를 가정윤리 요강으로 여기며 충서(忠恕·충성과 관대함)를 국가의 도덕 기준으로 여긴다.

●약해 보이지만 강한 응집력

중국인들을 평할 때 단결력이 약하다고 한다. 그 주요 원인은 절대적인 전제주의의 영향과 과도한 자기 중심주의, 과도한 자아보호 의식, 지방주의 등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 한 명은 용 한 마리지만 중국인 세 사람이 모이면 벌레 한 마리밖에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중앙과 지방, 한족(漢族)과 소수민족, 북방인과 남방인, 내지인과 해변 사람, 직장 내 사람과 외부 사람 사이에 단결이 잘 안 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국은 강력한 응집력을 과시해왔다. 이는 수천년동안 계속 사용해온 한자와 유교사상에 기인한 바 크다. 그들은 평소 서로 다투다가도 일단 외적이 침입하거나 국가가 위난에 처하면 하나로 뭉치는 특징이 있다.


[중국인을 대할 때 주의할 점]

●최대한 중국어를 사용하고 중국 역사를 배워라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 면전에서 진심을 털어놓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통역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솔직한 감정을 주고받기는 어렵다. 그들의 진정한 벗이 되려면 반드시 중국어로 직접 교류해야 한다.

또 중국인들은 외국인과 교제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외국인의 경험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 때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연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알고 있으면 금세 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자기 자랑 말고 공을 앞세우지 말라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또 자기 공을 앞세우며 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 사회에서 그럴 경우 불이익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돈 자랑, 지위 자랑, 영향력 자랑을 하면 오히려 경시를 당한다.

●직접 중국인을 비판하지 말라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부리거나 누구와 다투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말다툼을 할 때도 단정적이거나 분노에 찬 언어는 구사하지 않는다. 대신 늘 간접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 때문에 중국인과 말다툼을 할 때 절대 성질을 부려서는 안된다. 품위를 잃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 최대한 완곡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또 스스로 중화문명국의 국민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직접적인 비판보다 열성적인 충고와 격려가 훨씬 낫다.

●중국인을 느긋한 사람으로 오해 말라

사람들은 중국인의 기질을 ‘만만디(慢慢地·천천히)’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기질이라기 보다 중국 실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중국에서는 누구도 개인이 단독으로 어떤 사안을 결정할 수 없다. 반드시 어떤 직장이나 단체의 테두리 속에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단체나 개인 이익이 걸린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는 결코 ‘만만디’가 아니다. 그런 일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빨리 처리한다. (베이징=여시동 조선일보 특파원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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