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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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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3-05-01 (목)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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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류의 성경(신약)
5종류의 성경(신약)을 대조하여 읽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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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독교
중국의 기독교

손선영 저 (박영희 역)

기독교 특히 개신교 선교사들은 1807년에 처음으로 중국 꽝조우에 도착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내지에 들어가 전도할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1858년 <천진조약> 이 체결된 후에야 비로소 서양 선교사들이 대량으로 중국 내지에 들어와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1807년 부터 1842년 사이에 재화(在華) 신교 선교사는 24명, 세례받은 신도는 20명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 뒤 1900년에는 선교사 약 1500명, 신도 9만5천명이 되었고 1920년에는 신도수가 약 36만명에 이르렀으며 1935년에는 51만명에 이르렀다. 1949년에는 전국의 기독교 신자가 70만명에 달하였다. 1807년 부터 1949년 사이의 백여년간 서양교회에는 중국 전도를 위하여 대량의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중국에 기독교를 심어 놓았으나 실제로 기독교화를 실현하는데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1949년 부터 1978년까지 약 30여년간 중국 기독교의 발전은 둔화되었으며, 특히 문화대혁명 사이에는 거의 교회가 사라진 듯 하였다. 1978년 개혁 개방이후 기독교 신앙의 열기가 중국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1982년에 전국의 신도가 300여만명에 달하였으며 1987년 말에는 이미 400여만명에 이르렀고 그 증가속도가 같은 시기의 다른 몇개의 주요 종교 신자의 증가속도에 비해 훨씬 빨랐다. 그 때 이미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지방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빠른 회복과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동시에 그 당시 선교사들의 사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지역에서는 경제의 발전과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일반 기독교 신자와 자유 전도인에 의하여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서남 지구 일부 소수 민족 가운데서는 기독교가 원시종교를 초월하여 지방적 종교로 대체되었으며, 결국 전 민족의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90년대 이래 기독교는 계속하여 빠른 성장을 보였고, 전국 신자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 현재 약 천만에 달하였으며, 신도의 평균 연령 또한 낮아지고, 문화정도도 평균적으로 높아졌다. 기독교는 중국에서 갈수록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어떻게 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중국 기독교를 인식할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과제인 것이다.


□ 기독교가 중국에서 전파된 두 개의 경로

중국 전통 사회는 대개 사(士), 농(農), 공(工), 상(商) 등의 계층으로 나눌수 있으나 실질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단지 사(士)와 비사(非士)의 두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사(士)는 바로 유생(儒生) 즉 지식인이다. 그들은 어려서 부터 유가(儒家)와 경전(經典)을 배우며, 과거시험이나 기타 경로를 통해 통치 계층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국의 사(士)와 비사(非士) 두 계층은 문화적으로 각각 사(士)를 중심으로 하는 아문화(雅文化)와 비사(非士) 계층을 상대로 하는 속문화(俗文化)의 두 개의 계층을 이룬다. 중국의 종교 전통은 상하로 구별된다. 천자(天子)는 제천제조(際天際祖)하고, 지식인은 유가학설을 닦으며, 유학(儒學)에 탐닉하거나 또는 열성적으로 사회에 뛰어 들기 때문에 종교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사(非士) 계층을 주체로 하는 중국에서는 조상을 숭배하고 자연을 숭배하며 또한 유(儒), 불(佛), 도(道)의 여러 종교를 수용하는 민간종교 (통속 종교라고도 부른다)가 성행되었다.

불교 교리가 외부에서 유입된 후 아문화(雅文化)와 속문화(俗文化)의 두 단계에서 각각 중국 문화와 접촉하여 발전되었다. 장기간의 역사 발전을 거쳐 중국 사회에서 상하가 구별된 경전불교(經典佛敎)와 민속불교(民俗佛敎)로 형성되어 갔다. 불교경전는 중국의 지식층들의 열성적인 번역과 깊은 연구와 토론, 아울러 불교교리에 관한 역대 고승(高僧)들의 노력으로 도가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불교는 중국에서 중국 문화 특색을 지니고 여러 종파와 파벌을 형성하였으며 그 중심을 철학에 두었다. 불교철학은 특히 송조(宋朝), 명조(明朝) 때 유학의 흡수, 융합을 거쳐 중국 사상과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경전불교(經典佛敎)가 중국 문화 사상에 가져다 준 영향은 아주 크다. 그와 동시에 불교는 속문화(俗文化) 단계에서도 원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불교는 중국인의 요구와 이해에 따라 발전, 개조되고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중국의 민속불교(民俗佛敎)로 형성되었으며,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어 민간 풍속의 일부분이 되었다. 중국 경전불교와 민속불교는 비록 상하가 구별되기는 하였지만 상호 협조하며 보충하였다. 경전불교는 교의(敎義)의 순수성을 유지하였고, 민속불교는 종교발전과 전파를 강조하였다. 양자는 서로 상호 보완하고 도와가면서 함께 중국 사회에서 생존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근대 중국의 기독교 도입은 두 단계에 의하여 실시되었다. 이제마태(Timothy Richard, 1845-1919)를 대표로한 일부 선교사들은 주로 중국의 지식인들과 사회 고위층 인사들을 목표로 전도하였다. 그들은 서양 과학과 문화를 소개하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서양의 과학, 문화, 지식에 관한 서적을 번역하며, 심지어 중국의 정치생활에 참여를 통하여 더욱 광범위하고 높은 차원에서 중국 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기독교 발전의 적합한 문화환경을 마련하여 중국에서 기독교화(基督敎化)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중국의 최초 서양식 학교와 병원은 모두 개신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것이다. 1905년 광서(光緖) 황제는 유지(諭旨)를 내려 과거를 중지하고, 학교를 보급할 것을 지시하여 서양식 학교가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설립되었으며 전통적이며 낡은 교육제도를 점차 새롭게 바꾸었다. 현대적 교육 제도의 설립은 서양 문화를 보편적인 국민 교육에 침투시켜 외래문화를 중국문화의 일부분이 되게 하였다.

선교사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며, 그들이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소개했던 목적은 전도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희망과는 달리 비록 중국사회는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광범위하게 흡수하긴 하였지만 적합한 환경에서의 기독교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서양 선박의 견고함과 대포의 위력을 뼈저리게 경험하였기에 서양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부득불 서양 학문을 배워 산업을 진흥시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목적을 이루려 하였다. 또한 그들은 서양 정치제도에도 참고할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뒤 무술변법(茂戌択法), 신해혁명(辛亥革命) 등을 통하여 정제 개혁을 시도하였다. 중국에서는 서양문화의 부단한 신임과 중국 지식인들의 서양 유학으로 인하여 일부 서양 학문을 통달한 중국인들이 문화, 심리등 여러면에서 국민정신을 개선하여야만 근본적으로 중국을 개화시킬수 있다고 인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5. 4 새문화 운동이 발생할 수 있었다.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래 '태평천국(太平天國), 양무운동(洋務運動), 무술변법(茂戌択法),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부터 항일전쟁, 중국인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줄곧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문화적 영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영향력 있게 주도한 사상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5. 4 새문화운동에서 전반서양화(全磐西化)를 제기한 저명한 중국학자에 의하면 胡造 등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5. 4 지식계에서는 중국에서 민주화와 과학을 토대로한 새문화, 새사상, 새도덕을 건립하며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 날 것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더우기 1922년에 시작된 [비기독교 운동]은 청년 지식인들 가운데서 아주 큰 영향을 일으켰으며 [기독교]란 세 글자가 일반 청년과 학생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반감을 사는 단어로 인식되었다.

기독교는 유*문화 측면에서 중국 사회에 대한 영향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비록 많은 지식인 및 사회 고위층 인사들도 기독교에 귀의하고 있었고 또한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국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었으나 총체적으로 말해서 전반적 중국 문화에 대하여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독교 지식인 계층이 형성되지 못하였으며, 종교적 측면에서 기독교의 영향력 있는 작품들이 매우 적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는 국외에서는 기독교 교파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처럼 중국의 특색을 지닌 여러 종파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똑같은 외래 종교라 하더라도 기독교는 불교처럼 중국에서 경전 기독교 (經典 基督敎)의 높은 문화현상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중국에서 상당한 발전을 가져왔다. Timothy Richard와 동시대의 선교사 아덕생(James Hudson Taylor, 1832-1905) 등은 전도의 목표를 사회 하층에 두었으며, 순회전도, 의료전도, 개인전도 등 직접적인 방식으로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그들은 중국 내지인 변강, 소수 등 민족지구에 깊이 들어가 선교하였으며,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전도소를 세우고 선교사업을 확장하였고 심지어 제일 험난한 지역에 까지 선교를 감당하였다. 그리하여 민간에서 부터 시작하여 중국 전지역으로 기독교를 확장하였다. 이 일을 위하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중화내지회'를 창건하였으며 서양교회에 선교사를 중국에 파견할 것을 호소하였다. 내지회는 고등교육을 받은 선교사를 받아 들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정규적 교육을 받지 않고 목사 신분을 갖지 못한 선교사를 받아 들여 중국에서 전도하게 하였다. 선교사는 국적과 교파를 따지지 않고 단지 기본적인 교의(敎義)를 지키면 곧 내지회에 가담하여 중국에 가서 전도할 수 있었다. 내지회를 제외하고 19세기 말 신교의 몇 개 종파 즉 성결교(信義宗), 장로교(長老宗), 성공회(聖公宗), (公理宗), 침례교(侵禮宗), 감리교(監理宗)등이 모두 이미 중국에 선교사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전도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건설하였다. Hudson Taylor가 말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속세의 작업은 모두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며' '만약에 의료사업으로 복음 전파와 설교를 대체한다면 이것은 극히 잘못된 것일뿐 아니라 만약 학교와 교육으로 성령의 능력을 대체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개화한다면 이것 또한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의화단 운동(義火團 運動) 후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중점을 자선, 위생, 교육 사업에 두었으며 다만 내지회 선교사들만이 예전과 같이 편벽하고 낙후한 지역에 내려가 기독교를 전파하였다. 이런 지역의 신도들은 비록 경건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문화수준이 높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들의 신앙은 중국 민간 종교와의 마찰을 피할수 없었다.

1949년 중국대륙이 해방된 후 외국의 선교사들은 모두 중국을 떠났으며, 중국 기독교는 세계 기독교와 완벽한 단절상태에 들어가게 되었고 기독교는 독자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발전하였다. 몇십년 동안의 정치운동, 특히 1957년 후 기독교는 큰 발전이 있을 수 없었고, 특히 문화 대혁명 가운데서는 완전히 소멸되다 싶이 하였다. 각 지역에 흩어진 평신도들은 장기간 각종 조건의 제한으로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심도있는 연구와 토론을 할 수 없었다. 무신론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사회환경에서 기독교 지식인들은 보다 높은 문화, 공개적 장소, 학술 논단 등에서 기독교 신학을 변론, 연구, 토론하여 통속적 기독교 신앙을 인도하여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릴 능력과 조건이 되지 않았다. 객관적 역사와 현실적 상황이 중국 기독교를 다만 민간문화에 의지하여 보존되어 발전되도록 방치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중국 기독교는 몇십년의 소강상태를 거쳐 개혁과 개방 이후 주목할 만한 발전을 하고 있다. 세례받고 입교하는 신자의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일부 가정 모임도 나타났다. 한족(중국인) 농촌 지역에서 기독교 발전은 매우 빨랐다. 운남의 소수민족 가운데서 귀주 서북부의 묘족(苗族), 이족(邇族)의 경우 원시종교는 급속히 쇠퇴되고 기독교가 모든 종교중에서 가장 발전이 빨랐으며 사회적 영향도 날로 뚜렷하게 전개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 기독교 신자 80%가 농촌에서 생활하며, 그 중 절대다수는 여성 신자들이다. 기독교 - 이 순수한 외래종교는 중국에 전수되어 비록 중국사회에서 [경전 기독교]와 같은 높은 단계의 문화현상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중국에 정착하여 민간에서 발전하였다. 필자는 이것을 [중국 민간 기독교]라 호칭한다.



□ 중국 민간 기독교의 의의와 특징

중국은 개혁과 개방이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생활 수준이 보편적으로 높아졌으며, 사회가 안정되고 대중 문화 생활이 날마다 새로워 지고 있다. 기독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중국사회는 오늘과 같이 번영태평한 시대를 나타낸적이 종래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점차 소실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급속한 발전의 추세를 보여주었다. 중국 민간 기독교의 발전은 종교 발전의 보편적인 현상을 나타내었다. 즉 중국 민간 기독교의 증가는 민중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정도에 의하여 결정된다. 현대 종교학자들은 종교에 대하여 일종의 공통적인 현상으로서 종교통합이나 공존을 주창하고 있다. 종교적 공존이란 일반적으로 의, 질서, 총체성을 가지고 인간의 가치있는 생활을 이루는 도구로 이해하고, 이것을 참된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기독교는 현실 초월적 현상과 적극적으로 사회에 몰입하는 이중적 특징을 갖고 있다. 신약성경는 하나님의 계명을 아래와 같이 두가지로 귀결하고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骕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목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30-31). 기독교의 하나님은 全知, 全能, 全善하며 형상이 없고 우상 숭배하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인간이 마지막 날에 대한 추구와 무한에 대한 동경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약 한계와 무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일치하려면 오직 자신을 끊임없이 향상시키고 자신을 완벽하게 향상시켜야 한다. 사람은 신앙이 없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자신의 정신적 안식처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그 자신에 대하여 내재적인 감화력을 갖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향상케 하는 최종목표를 선택한다. 만약 한 사람이 선택한 것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면 그가 마음으로 부터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생활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외에 인간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직면한다. 이에 대한 기독교의 계명은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고, 또한 지속적인 노력을 거쳐야만 가능할 수 있다. 만약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에 따라 생활한다면 세상의 충돌과 싸움은 점차 없어지며 하나의 보편적 사랑이 넘치는 나라로 건립되어질 것이다. 사랑은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시발점과 종점이다. 기독교가 갖고 있는 초월적 신앙, 사상적 추구,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특징적 요소는 종교적 위안이 필요하고 적극적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가진 중국 민중들에게는 매우 강렬한 흡인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신앙의 만족을 얻을수 있으,며 또한 이런 신앙을 통하여 자신과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전통적인 다신신앙(多神信仰)에서 하나님 한분에 대한 신앙적 변혁은 신앙의 격변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신교는 유럽 종교개혁의 산물이고, 신교의 윤리와 도덕 또한 유럽 자본주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세계와 타지방에서도 산업화의 과정에서 많은 민중들을 흡인하고 있다. 일부 신진 공업국에서도 근 몇 십년간 신교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 이후 윤남성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는 다양한 측면에서 원시종교와 각종 봉건 미신활동과 비교해 볼 때 현대 사회 생활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기독교는 세계를 향한 높은 단계의 문화 현상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낙후 상태에 처해있는 농촌 사회에 돌파구를 열어 놓았고 농민들로 하여금 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대단한 유익을 끼쳤지 결코 해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다신을 믿지 않으며 살생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망령개념과 다신 신앙에서 탈피하게 한다. 중국 민간 기독교는 특히 십계(十戒)를 중히 여기고, 담배와 술을 금하며, 도적질과 살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도박을 하지 말기를 요구하며 또한 계획생육을 할것과, 과학 기술 문화를 배우고 정부관리에 복종할 것 등을 강조한다. 대중적 신앙활동을 통하여 사회의 일부 낙후한 풍습과 습관을 점차 변화시킴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등 적극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기독교 전통은 단체생활을 중히 여긴다. 특히 교회 단체활동은 기독교 생활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교회의 예배의식, 명절활동 등은 신도들의 종교적 요구를 만족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다스리며 연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사회 결속을 가져왔다. 전통적 가족 개념이 점차 소실되는 중국사회에서 교회의 활동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동감과 귀속감을 얻게하였다.

교회에서는 종교 활동외에 사회봉사를 강조한다. 신도사이에 상호관심, 상호이해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교회는 이런 봉사를 사회 전반에 널리 보급하였고 다리를 보수하고 길을 닦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노인, 약자, 병인, 불구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여러 종교들은 모두 '선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으나 기독교는 한층 더 나아가서 단체적 시각에서 '선하게 행동'하는 교리를 실천하였다. 이렇게 중국 민간 기독교의 사회적 봉사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근본적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와 이유를 살펴 볼 수 있다.

하나의 종교가 한 민족으로 부터 다른 민족에로 전파될 때 여과없이 전수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원래의 전통을 살리면서 기타 문화 전통을 흡수하여 자체의 내용과 형식을 포함하고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해야만 올바르게 전파하였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여러 전통 문화의 수용과 흡수가 용이하며 매우 강한 적응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는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로 자리할 수 있는 필수적 요건을 갖춘 것이다. 중국문화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 민간 기독교는 유(儒), 불(佛), 도(道) 등 여러 신령(神靈)을 용납할 수 있고 아울러 인격을 신적 위치에서 이해함으로써 도약하는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 기독교가 중국에서 발전하면서 문화적 단계가 비교적 낮은 민간에 편중하였으며, 아울러 한족(漢族-중국인)의 종교 관념이 장기간 귀신을 믿고 선조를 공경하는 등 비교적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 미신과 운명사상이 이들의 보편적 신앙사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민간 기독교는 많은 미신과 구술적 내용이 융합되어 있으며, 세계의 기독교와 비교하여 볼 때 많은 미신적 성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이나 신자의 신앙성격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경제와 문화적 지위가 높은 신도가운데는 지식층 신자의 비율이 비교적 높으며, 정규적인 신학훈련을 받은 교회 지도자가 있는 연해지구와 대중성시의 교회의 성도들과 그 신앙은 비교적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와 문화가 상대적으로 낙후하고 봉쇄된 농촌 또는 변강 소수 민족 지역의 많은 기독교 가정 모임의 신자들은 당연히 민간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보편적으로 말하면 중국 민간 기독교는 기독교 전통신앙 즉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을 믿으며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믿고 있으며 [성경]을 신앙의 근거로 하고 있고 상당 부분 중국화(中國化)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하나님 관

강서성 무님현(江西省 武媡縣)이 기독교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지방 기독교 신도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인과보응(因果報應)의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다.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하나님을 믿으면 보우(保佑)받고 그렇지 못하면 징벌을 받는다. 현실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어 인간의 요구를 곧 만족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또한 요괴와 악마를 붸아낼 수 있으며 앓는자로 하여금 건강을 회복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 앞에 너무 비천하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근심될 때는 선교사에게 부탁하여 대신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대중들은 선교사들이 대신하여 기도하는 것이 더욱 효력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집안에 환자가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선교사도 등급이 있으며 대중에게 덕망이 높은 선교사들이 하나님과 더욱 쉽게 왕래할 수 있어서 그들이 대신하여 기도하면 더욱 효력이 있는 것다고 믿는다.


2. 삼위일체(三位一體)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원래가 심오하여 파악하기 어려운 교리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원래 일체(一疜)로서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비록 하나이지만 또한 셋으로, 또한 비롯 셋이지만 하나로 이해된다. 이는 매우 추상적이며 신비감을 소유하고 있다. 한번은 외지에서 선교사라고 자칭하는 세사람이 방문하였는데 그들은 각각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분장하고, 신도들에게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라고 강요하면서 이것이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공경히 인사 올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3. 성경

농촌 기독교 신도 가운데는 문맹이 다수를 차지하며, 조사에 의하면 농촌 기독교 신도 60%가 문맹이며 성경을 읽을수 없는 사람이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앞다투어 성경을 사고 성경을 붉은천으로 싸서 궤짝밑에 소중히 간직한다. 만약 앓는 사람이 있으면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외출시에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악마를 누르고 귀신을 붸으며 사람을 보우하며 무사태평하게 한다고 확신한다. 또 다른 지역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절대 다수 신도들이 문맹 혹은 만문맹 상태에 처하여 있으며 종교신앙 수준이 비교적 낮고 온 마음에 '현령'(성령) '승천'의 이념으로 꽉 차 있으며, 때로는 직업을 포기하고 집단적으로 산에 올라가 '승천 구원받기-성령'을 기다린 사건도 있었다. 또 현령(顯靈), 승천(昇天), 그리고 귀신을 몰아낸 이야기는 여러곳에서 여러번 들은적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 어긋나며 민간의 봉건미신과 매우 비슷하다.


4. 기독교 윤리 도덕의 중국화

중국 기독교는 십계명을 매우 중히 여기며, 지역에 따라 그 내용도 달라진다. 운남지역의 십계명은 술 마시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며, 도박을 해서도 안되며, 살인을 하지 말고, 매매 혼인을 하지 않고,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며, 사람을 꾀어 팔지 않고, 귀신을 믿지 않으며, 위생을 지키고, 일부일처제를 실시한다. 운남 지역 연강의 십계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일부일처제를 실시하며, 사람을 꾀어 내어 팔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서로 사랑해야 하며, 살인하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으며, 도박을 하지 않고, 귀신을 믿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중국 교회의 십계명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중국인 지역의 십계에는 '우상을 공경하여 모셔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나 중국 민간 전통은 조상을 공경히 모신다. 중국의 민간 기독교는 양자의 모순을 조절하였으며 신도들의 말 그대로 '만약 마음속으로 오직 유일한 하나님만 믿는다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는 형식적으로 절하여도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5. 기독교 의식의 중국화

도시교회의 기독교 의식은 예배적 차원에서 볼 때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농촌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선교사 시대로부터 노래와 춤에 능한 소수민족의 특징에 근거하여 이른바 [희락 예배]를 드리며 있다. 그들은 영가를 부르고, 영무(靈舞)를 추며, 민족언어로 찬송가를 부르며, 소수민족들의 삶 즉 그들이 즐겨 듣고 보는 형식을 기독교 의식에 융합하였다. 예배일 혹은 교회 명절 때 여러 소수 민족 마을에서는 여기 저기에서 찬송가 소리가 끊임없이 울러 퍼져 농후한 종교적 분위기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종교감정을 통하여 사회단합을 꾀하기도 하였다.

중국 기독교는 기독교의 기본신앙을 보존함과 동시에 내용과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중국 민간 종교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 전파 과정의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민간 기독교를 미신적 신앙으로부터 구별하고 나아가서 미신을 제거하며 건전하게 발전시키는가 하는데 있다.



□ 근대 중국 민간 기독교의 발전

중국 민간 기독교는 근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수많은 신도를 갖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에 의하면 중국의 기독교는 수년내에 획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리라 본다. 하나의 순수한 외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중국 사회에서의 끼친 영향은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기독교가 중국의 지식 계층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또한 중국적 신학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는 기독교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불리하다고 볼 수 있으며 전체 기독교의 신앙을 북돋우는데도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자리 잡을수 있는 것이다. 어쩌며 이것이 중국 기독교의 가장 부족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에서는 기독교가 문화수준이 낮은 민간에 편중되었는데, 이는 특수한 역사적, 현실조건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의 기독교와 비교하여 볼 때 중국 기독교는 뚜렷하게 저급하고, 거칠며, 그리고 미신적이고, 낙후되었으며 그 발전 또한 맹목성을 띄고 있다. 만약 이것이 민간 봉건 미신과 결합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선교사로 자칭하는 자들과 불순분자들에게 의하여 대중을 미혹시키는 역할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강권(强勸), 포함(礐艦), 불평등 조약등이 수반되었다. 아편전쟁부터 의화단 운동(義和團)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지에서 수백차례의 교란이 일어났으며 (그 중 천주교로 일어난 교란이 다수를 차지함) 사건의 결말은 모두 중국 사람들의 심령에 치욕과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 근대에 있어서 서양의 침략은 중국으로 하여금 국민이 궁핍해지고 국가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였으며 기독교의 사랑의 교리는 현실 생활에서 증오와 아픔만을 남기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역사를 회고하면 중국 지식층이 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왔올 때 중국의 전통문화는 거대한 보수적 기질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기독교 문화와 중국 문화 사이에 얼마간 충돌점이 있었다. 기독교는 평등한 태도와 대등한 입장에서 중국의 위대한 문화전통을 대하지 않았고, 그들의 국력을 바탕으로 높이 앉아 내려다 보듯이 하였으며, 기독교 문화로 중국 전통 문화를 대처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중국 지식층의 배척을 받게 되었고 양자간에 상호이해 또는 나아가서 상호수용, 흡수, 융합은 근본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중국 유문화 단계에서 경전기독교 (經典基督敎)의 높은 단계의 종교 문화현상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는 중국 기독교가 분명하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대단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각종 사상과 문화가 상호간에 깊은 영향을 행사할 뿐 아니라 상호 연합되고 흡수되는 추세에 있다. 강권을 믿고 한 문화를 다른 문화에 이식하고 대체하려는 시도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현재 세계의 각종 문화들은 모두 세계무대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려고 애쓰고 있다. 긍정적으로 말해서 생명력 있는 종교란 우수한 문화들을 능숙히 수용, 흡수해야만 강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증언함과 동시에 나아가서 독특한 그들의 전통문화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도 대단한 변화를 가져 왔다.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사회의 물질, 생활방식, 문화형태, 지식구조 등의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중국 문화는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장기적으로 발전하면서 중단되지 않은 문화체계이다. 비록 근 300년 사이에 뒤떨어졌기는 하였으나 백년간의 노력을 걸쳐 이미 점차적으로 서방 선진국들의 발걸음을 따라 잡았다. 개혁과 개방후 중국 사회는 더욱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경제와 문화 역시 세계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은 현재 중국사회의 조류이며 시대적 요청이다.

기독교 세계도 대단한 변화를 가져왔다. 20세기 40년대 말부터 50년대에 이르기 까지 중국 기독교는 세계 기독교의 주류에서 이탈되어 단독으로 중국 사회에서 발전하고 있을 때 세계 기독교 신학에는 이미 여러 가지 새로운 사조가 나타났다. 예를 들면 신정통 신학, 위기신학, 변증신학, 존재주의 신학, 과정신학 등이다.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신학의 정상을 정복하고 있었다. 20세기 60년대에 일종의 급진, 세속적인 기독교 신학이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른바 급진적 세속신학 혹은 사신신학이라 불리웠다. 세속신학의 핵심은 당대의 세속적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기독교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내세만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현세를 가르킨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도 역시 현세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만약 종교가 직접적으로 사회문제를 관심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미신적인 것이며 위험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세속적이며 현세적 생존이야말로 인간이 유일하게 관심 또는 주목할 대상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인식과 판단기준이 반드시 인간이 생존하고 있는 세상의 체험에서 오는 것이지 단순히 성경의 계시를 바탕으로한 교회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급진적인 세속 신학가들은 신으로서의 예수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고 역사적, 인간적 예수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았고 이웃을 위한 봉사 역시 그의 중요한 사역중 하나였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삶을 따른다고 하면 반드시 이웃의 고난과 고통을 자기의 고난과 고통으로 승화하여야 할 것이며,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 기독교 신학자와 일반 신자들은 한결같이 세속신학의 관점에 동조하고 기독교의 가치관을 반드시 현세적 삶에 돌려야 하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중국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 문화와 기독교 문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양자는 모두 적극적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세계를 아름답게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 기독교가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 기독교 신학과 맥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중국 기독교가 만약 자원하는 마음으로 당대 기독교 신학의 정수를 흡수하여 자체의 경전 기독교화 한다면 중국 민간 기독교를 더욱 높은 단계에로 발전 시킬수 있으며, 또한 자아 완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위대한 작업은 반드시 중국의 신도들에 의하여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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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3-05-01 (목)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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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565    
중국기독교 신학사상 건설해야
“중국기독교 신학사상 건설해야”

丁光訓 애국위 명예주석 주장

중국 기독교는 50년 전에 창설한 ‘3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自治·自養·自傳)’ 노선을 견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학사상을 건설해 기독교 발전과 사회주의 사회가 서로 부응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중국 언론이 지난달 22일 중국의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 딩광쉰(丁光訓) 주교(主敎)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금년 85세의 고령인 딩광쉰 주교는 현재 전국정협(政協) 부주석·중국 기독교협회 회장·3자애국운동위원회 명예주석이다.
딩 주교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기독교 3자애국운동 50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신학사상 건설은 기독교의 기본 신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본 신앙과 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며 현재 목사들이 설교하는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사회주의 사회에 적당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으로 언론은 전했다.
그는 예를 들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내용은 많은 중국 신도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담을 주는 것이므로 이런 교의에 대해 목사들이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 기독교협회와 3자애국운동위원회는 신학사상 건설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중국 기독교 문자출판계가 중국사회와 맞지 않는 내용을 외국 선교사가 전해준 대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 개정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언론은 밝혔다.
딩 주교는 종교와 사회주의 사회가 서로 적응하도록 적극적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쟝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단지 말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사상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딩 주교는 오늘날 신학사상 건설은 3자애국운동 발전의 필연이며 기독교가 중국사회에 적응해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2000-10-07  베이징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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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3-05-01 (목)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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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600    
기독교는 언제 중국에 전파됐을까
기독교는 언제 중국에 전파됐을까?

기독교가 언제 중국에 전파됐는지를 둘러싸고 오래 동안 학계에서 논란이 돼왔다. 그러나 중국 학계에서 최근 그 시기를 서기 4세기로 보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상하이(上海)사범대학의 쑨징야우(孫景堯) 교수는 서방 기독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를 서기4
세기 내지 6세기의 남조시대라고 논증함으로서 국제 학술계의 정론을 뒤엎었다.
서방의 기독교는 언제 중국에 전해졌을까? 국제 학술계는 통상 서기635년(唐貞觀 9년)으로
인정해 왔었다.
영국의 종교사가이며 한학자인 아더 몰은 '1550년 전의 중국기독교사'에서 "서기 635년 중국
에 있었던 경교회(景敎會)를 중국 기독교의 확실한 첫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라고 썼다. 프랑스
학자 폴 펠리오는 심지어 "7세기 이전 기독교의 흔적이 '도장(道藏)'에 나타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단언했다.
서양인들의 이러한 결론이 지난 50여년 동안 학계에서 인정돼 왔지만 쑨 교수는 '동방총간'
최신호에 발표한 '중서문화조기왕래의매개자 푸난(扶南)'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기독교 문화의
흔적을 '도장'에서 찾아내고, 기독교의 중국 전래 상한시한을 4세기부터 6세기 사이의 남조시대
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쑨 교수는 몰이 근거로 삼은 '대진경교유행중국비송병서(大秦景敎流行中國碑頌幷序)' 비문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635년 장안에 온 사람은 '대진국의 상덕(上德)인 알로펜즈'인데 그는 일반
전도사나 신도가 아니라 이름이 알로펜즈인 '주교'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독교의 중국 전파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도나 전도사가 먼저 오고 주교
가 후에 파견된 것이 아니라 주교가 먼저 파견되고 나중에 전도사와 신도가 왔다는 말이 된다.
기독교의 전래엔 해상의 실크로드가 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쑨 교수는 3세기부터 7세기까
지 존재했던 남해의 고왕국 푸난(扶南=메콩강 하류에 있던 나라)을 중점적으로 논술했다. 이곳
은 중서의 이질문화가 교류하던 해상 실크로드상의 중요 기지였다. 쑨 교수는 기독교문화가 푸
난을 경유해 당대 이전에 중국으로 전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 이를 근거로 '도장'의
'태청금액신단경(권하)'에 나오는 기독교문화와 관련된 수수께끼를 파헤쳤다.
"옛날 중국인이 푸난에 갔다가 다시 푸난에서 배를 타고…60일만에 해안에 도착했는데 어디
인지 알지 못했다. 해안에 올라 사람을 찾아 물어보니 대진국이라 했다.…이 나라는 대도(大道)
가 생겨난 곳으로 그 도리가 오묘하며 매우 특이하여 중국인들이 되는 대로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도사들이 아주 많으니 상고지풍(上古之風)이 있더라"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
는 '대도'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도'가 아니고 석가가 칭송한 '중도
(中道)'도 아니며, '그 도리가 오묘하고 특이한' 대도는 대진국(동로마제국)에서 생성된 '대도'라
는 것이다. 쑨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대도'가 바로 기독교만이 가진 계명 "도로 사람을 부리고
의로 사람을 보라(以道使人, 以義觀人)"라고 고증했다. 즉 이것은 옛날 중국인이 대진국에 갔다
돌아오면서 가져온 기독교문화 소식이었다는 것이다.[베이징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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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3-04-26 (토)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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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4396    
중국 단기선교 준비는 이렇게
선교의 디딤돌 아니면 걸림돌?

1. 여행의 목적과 목표 정하기
단기선교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이 여행의 목적과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마치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를 잘 닦아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여행이 비전트립인지, 정탐 여행인지 아니면 실제적인 단기선교사역인지 먼저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이 때 주의할 것은 이루지 못할 너무 큰 목표를 세우지 말라. 거리에서의 찬양사역이나 노방전도는 삼가야 된다. 여행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여행기간과 준비사항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행기간은 방학을 이용하는데 학생들인 경우는 2주 정도, 목회자나 직장인들인 경우는 1주 정도로 정할 수 있다.

2. 팀 구성과 정기적인 준비 모임
이 단기선교 여행에 참여할 팀을 구성해야 한다. 가능하면 팀원은 다수보다는 소수(10명 내외)로 정예화해서 가는 것이 좋다. 팀원이 확정되면 적어도 두세 달 정도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면서 여행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며, 여행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이 준비 모임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 준비 모임 시간에 가려고 하는 지역에 대한 연구, 기본적인 언어 준비, 육체적인 준비. 영적인 준비, 여행계획 등을 세운다. 가능하면 떠나기 전에 몇 일 동안 합숙 훈련을 하여 팀원들간에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팀원이 확정되면 여권, 비자, 비행기표 수속을 해야 한다.

3. 여행지 결정과 지역연구여행
목적과 기간에 맞는 여행지를 결정하고 그 지역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 연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여행 지역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문화충격이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그 지역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여 영적 전쟁을 위한 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연구할 때 그 지역의 생활풍습, 날씨, 언어, 환율, 전압, 차량, 그 지역 전화번호, 여행시 주의사항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아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영적인 상태를 알기 위해 그 지역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어둠의 세력이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영적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4. 현지 선교사와의 연락 및 협력
가능하면 중국선교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방문하려고 하는 지역의 사역자와 미리 연결하여 그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중국은 땅이 너무 넓고, 따라서 여러 가지 상황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선교사와 미리 긴밀하게 연락하여 그 지역상황을 듣고 도움을 구한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선교사와 전화할 때, 호칭 사용 등 보안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사용하고 있는 전화가 도청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여행일정 잡기
여행일정을 잡는 방법은 여행 전에 미리 자세히 일정을 잡는 방법과 현지에서 그때 그때마다 기도하며 잡는 방법, 그리고 두가지를 병행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어렵지만 가능하면 여행 목적에 맞도록 일정을 미리 잡아가는 것이 좋다. 이 때 유의할 것은 여행일정을 계획적으로 하여, 재정 담당자. 시간 관리자, 숙소 담당자, 간식 담당자, 음식 담당자, 의약품 관리자 등을 결정한다. 또한 기록을 위해 일지 기록자, 자료수집 다미당자, 사진 촬영기자 등도 필요하다. 그리고 대외 관계를 위해 선물과 감사 카드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중복되지 않도록 하고, 각자의 은사에 따라 담당하도록 하며 서로 세워주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6. 예산 세우기와 재정 모금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할 때 너무 빡빡하게 짜지 말라, 중국이 우리 나라에 비해서는 물가가 싼 편이지만 베이진(北京), 상하이(上海)등 대도시의 물가는 많이 상승되어 있고, 이동할 때 대중 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택시를 이용할 경우 예상밖에 비용이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행 경비가 너무 빡빡하면 현지에서 도와주는 유학생이나 선교사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재정을 모금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기도편지나 후원요청 편지를 사람들에게 보내 여행을 위한 기도부탁과 필요한 재정을 위해 후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편지 내용에 여행지에 대한 소개, 여행의 목적과 목표, 여행에 필요한 경비, 앞으로의 비전 등에 대해 설명하면 좋다.

7. 기도 후원자 확보
단기선교 여행을 준비하면서 정기 모임을 통해 팀원들이 합심하여,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날 때 개인적으로 세 명 이상 기도 후원자를 세워 놓고 가야 한다. 그 기도 후원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여행하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라. 또한 전체 여행팀원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그룹을 만들어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떠나라.

8. 선물 준비하기
중국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라. 중국인의 집에 초청을 받았을 경우, 중국인의 도움을 받았을 때, 기차 속에서 중국인을 친구로 삼고 나서 뭔가 주고 싶은데 준비된 것이 없다면 난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큰 선물을 주면 부담스러워 한다. 한국의 특산물이나 기념될 만한 작은 기념품이면 된다. 예를 들면 열쇠고리, 작은 악세사리, 한국 풍물이 실린 그림엽서나 감사 카드 등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현지에 계신 선교사님이나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경우 그들에게 줄 선물이나 헌금을 준비해야 한다.

9. 여행 짐 꾸리기
짐을 꾸릴 때는 공동 짐과 개인 짐을 구분하여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잘 챙겨야 한다. 공동의 짐인 경우 각 조에게 책임량을 할당하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 개인 물품은 여행하면서 꼭 필요한 것만 선정하여 가능하면 가볍게 싸라. 중국에서는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고 기차 안에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컵을 준비해 가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필름과 건전지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양보다 더 많이 준비해라. 어떤 지역에서는 이 물품들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여권과 비자를 복사해 둔다.

10. 팀원들의 하나됨 지키기
선교여행을 아무리 재미있게 잘 다녀 왔다 하더라도 팀원의 하나됨이 깨어져 버렸다면 이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단기선교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단기선교 여행을 다녀오는 궁극적인 목적가운데 하나는 장기 사역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팀원들의 하나됨이 깨어지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여행중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거나 서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팀장에게 순종해야 한다. 여행 기간동안 정기적으로 나눔의 시간을 가져 팀원들간에 갈등이 있다면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11. 기록에 남기기
단기선교여행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가, 돌아와서 정리하여 작은 핸드북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교회나 모임에서 보고하는 시간을 가지라. 보고 경험한 것들과 선교지 상황, 기도제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같이 중보할 수 있도록 정보를 나누어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여행에 대한 평가, 재정보고, 선교에 대한 비전. 여행을 통해 각자가 깨달은 점, 배운 점, 좌절, 전망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라.

맺음말
철저히 준비하고 다녀오는 단기선교여행은 젊은이들에게 선교비전을 갖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인격적, 영적으로 성장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안목을 넓혀 준다. 따라서 그 중요성과 당위성은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중국으로 단기선교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중국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보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장기 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고 돌아오길 기도해 본다.

「중국을 주깨로」99년 7,8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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