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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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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7-19 (월) 17:52
홈페이지 http://www.chinam.org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8916    
중국인들의 각 지역별 특점

 

中國人 이야기


1. 北京人 : 永遠히 北京에 남고 싶은 北京人

[北京은 中國人의 꿈의 故鄕]
  
유구한 歷史와 함께 독특한 魅力을 갖고 있는 北京은 中國人에게 「마음의 首都」
1) 長安, 洛陽, 開封, 臨安, 金陵 등 옛 왕조시대의 首都 中 오직 北京만 과거의 영예를 현재까지 유지. 漢族은 물론 소수민족 사회도 北京을 신성한 대상으로 취급
2) 천안문과 자금성, 고대 유목민의 천막을 상징하는 天壇, 토지의 상징인 地壇, 북쪽에 가로질러 있는 만리장성, 양자강 이남까지 통하는 운하 等은 北京의 유구함과 장엄함을 대변
3) 변경이나 지방 사람들은 北京에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北京人들은 타향으로 옮기는 경우 큰 상실감을 느낌

北京은 경제적·환경적으로 뛰어난 도시는 아니지만 文化와 情趣의 중심지
1) 北京의 경제력은 고대는 杭州(浙江省 省都), 揚州(江蘇省의 도시)에 근현대에는 上海나 南京에 개혁개방 시대인 지금은 경제특구 및 연해도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 東京이 일본 GDP의 18.7%를 차지하는 데 비해 北京은 3%에 불과
2) 北京은 춥고 건조하며 首都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열악. 해안에서 200km 떨어진데 불과하지만 사막 한가운데와 같은 느낌
3) 그러나 北京의 가을 단풍은 중국 최고이며 西山의 단풍놀이는 北京 서민들의 교외 나들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 北京은 중국 최고의 文化人, 知識人을 배출했는데 현대소설가인 위다푸(郁達夫), 극작가 라우셔(老舍) 等의 지식인은 北京의 정취와 문화를 높이 평가

北京은 北方 遊牧民族과 中原의 農耕民族이 융합하여 만든 문화복합체
1) 거란족, 여진족이 최초로 北京에 수도를 세우고 북방의 각 민족문화를 융합하여 北京 중심의 문화를 창조
2) 원나라 때 건립된 大都(北京의 元代 명칭)는 양자강 문화와 황화의 문화를 흡수해 다민족성, 짙은 종교색채, 家父長制, 귀족의 有閑生活을 창출
3) 明代에는 漢族文化가 보충되면서 북방민족의 성분과 종교색채가 퇴색했고 淸代에는 북방의 민족문화가 중화민족 문화에 흡수. 北京은 元, 明, 淸, 중화인민공화국의 首都로 56개 민족이 거주. 回族 27.7만, 滿洲族 16.5만, 蒙古族 1.7만 等             

北京人은 首都市民으로서의 이익과 위험에 동시 노출
1) 청나라 이래 수도의 노동력 확보, 사회안정을 위해 국가는 北京人에게 특별혜택을 제공. 北京人들은 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조차 막노동을 하지 않고 정부의 분배를 기대(막노동은 외지인의 몫)   
20 그러나 北京은 무술변법, 의화단의 난, 원세개의 권력 찬탈, 노구교 사건,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건 等 혼란기나 왕조 교체 시기에는 가장 위험한 지역. 北京人은 이런 역사를 겪으면서 적당한 단념과 달관이 습성화
3) 현재는 교통혼잡, 고물가, 자원부족 等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지방에서 온 외지인들에 대한 피해의식과 폐쇄적인 자존심이 北京人들을 웃음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음

[北京人은 豪放하고 勇敢하며 새로운 思潮를 創出]

北京人의 호방하고 용감한 기질 때문에 北京은 순박하고 건강하며 웅건한 氣風이 흐르는 도시가 되었음
1) 北京은 山海關에서 중국 내지로 통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山地로 둘러 싸인 열악한 환경에 놓여 原住民은 생존을 위해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을 소유. 다른 首都의 文化는 부패로 끝났지만 호방한 北京人의 기풍 때문에 北京은 건강
2) 北京 일대의 하북지역은 전통적으로 武를 숭상했으며 전국시대말 燕의 荊軻, 삼국시대 劉備, 당나라 安祿山, 요나라 야율아보기, 명나라 영락제 等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
3) 호방한 기풍은 北京人의 회사 경영방식에도 나타나 北京人은 대규모 자본금을 모집하고 큰 규모의 사업을 하지만 반면 사기를 당할 때도 크게 당함

北京人은 정직하고 성실하며 인정으로 이어지는 인간관계를 유지
1) 北京人은 사회의 도덕평가 기준을 매우 중시하는 반면 형이상학적 사고가 부족하지만 紀律이 엄하고 公正無私하며 솔직담백
2) 北京人은 强權에 굴하지 않고 역경에 강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의식이 강함. 1919년 5.4운동, 4人幇의 전제정치에 대항한 1976년 天安門 사건, 일본 점령시절 교수 및 관료들의 태업은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北京人의 자세
3) 北京人은 식사후 서로 돈을 지불하려거나 여행시 가지고 온 음식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等 서로를 배려. "단 한번이라도 친구를 속이면 평생 마음고생을 한다"는 격언처럼 北京人은 사람과의 교제에서 友情을 가장 중시

中國人이 유머감각이 없다는 평가와는 달리 北京人은 풍부한 유머감각을 보유
1) 외국인들은 中國人이 유머감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中國人에게도 유머감각이 있으며 단지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들 뿐임
2) 그 중 北京人은 여타 도시민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유머센스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음
3) 만담의 거장 허우빠우린(侯寶林)은 길거리 잡기에 불과했던 만담을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예술로 승화

역사적으로 능력있는 인재들이 北京에 집결하여 새로운 사조나 기풍을 창조하고 전파했음
1)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는 1898년 北京에서 변법보국을 주장, 유신운동을 지휘했고 탄쓰퉁(覃嗣同), 리우꽝디(劉光弟) 等 애국지사들은 청나라를 전복하려는 혁명운동에 투신
2) 20세기초 北京大 총장 차이웬페이(蔡元培)는 천두시우(陳獨秀)를 문과대학 학장으로 초빙했고, 北京대학 문학부에는 루쉰(魯迅) 等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교수로 재직. 이 시기에 北京은 新文化運動의 발상지 역할
3) 北京은 막스주의 운동의 고향으로 천두시우 等의 주도로 1920년 北京大學에 중국 최초의 막스주의 연구회가 조직되기도 했음

北京人은 우월감과 열등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음
1) 北京은 元代 이래 800여년간 변함없이 수도로서의 역사를 가져 수도 숭배라는 부산물과 이에 따른 집단적인 우월감, 자만 等을 갖게 되었음
2) 그러나 남쪽 해안 지역과의 경제력 격차(높아지는 지방의존도), 사회경쟁 격화(지방 인재의 끊임없는 유입), 신흥부유층 탄생 및 외국문화 유입 等은 北京人의 우월의식을 뿌리채 흔들고 있음
 

[不健全한 消費文化의 浸透]

北京은 역대 王朝의 首都로서 지방 각지에서 여러 형태의 공물이 올라오고 민간 예술인들이 초대되는 等 장구한 소비생활의 역사를 갖고 있음
 1) 北京商人의 활동에는 上海의 工場主나 社長이 부르주아 계급으로서 이익만을 추구한 것과는 달리 정치나 인정 等을 고려. 北京은 수완이 아니라 信用이나 義理로 장사한다는 독특한 상업형태를 20세기 초까지 유지
2) 현대에는 중앙정부의 일부 권력층들이 권력을 이용해서 돈을 긁어 물같이 쓰고 있는데 이것이 北京의 특수한 소비의 일부를 구성. 90년대 이후 출현한 졸부들이 부의 과시와 허영심 충족을 위해서 초고가 의류, 귀금속, 외제 자가용 等을 구입
    
北京人들은 청나라 滿洲八旗의 향락문화를 소박하게 전환시켜 계승
1) 北京人은 소박하지만 우아하고 품위있는 일상생활을 습득하여 새나 화초를 키우고 생활예술을 중시하여 京劇을 성행시킴
2) 北京人은 자신도 만주팔기와 같은 귀족이라고 간주했으며 다른 지방 및 외국에 대해 폐쇄형, 보수형의 北京文化가 탄생
3) 오늘날에도 北京人들은 八旗人의 유풍이 배어 있는 행위양식을 통해 타 지방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皇帝의 상서로운 기운을 향유하고 있다는 허영심과 우월감을 충족

北京이 정치의 중심이므로 北京人의 정치의식이 높아 名分이나 形式을 중히 여기는 경향도 있음
1) 그러나 北京人의 정치의식은 연극같은 허구, 형식주의, 겉치레와 체면, 비이성주의 等으로 표출.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원세개는 국민대표들의 민주적 단체투표로 입헌군주가 되었다고 발표
2) 최근에는 허영심에서 가난한데도 착실하게 일하지 않고 한꺼번에 엄청난 부를 가지려는 성향을 가진 소위 '新旗人'이 등장. 이들의 특징은 마치 八旗兵士처럼 오만하고 허풍이 심하다는 것
 
北京人은 아직도 체면을 중시하는 성격을 갖고 있음
1) 北京은 남방지역보다 5년 이상 늦은 1992년에 부업에 대한 금지 규정을 해제했으나 체면을 팽개치고 부업을 가진 사람은 소수
2) 남방지역과 달리 北京人은 돈보다 체면을 우선

역사적으로 혜택을 받아 온 北京人은 힘든 일을 기피
1) 北京人은 수백 년 동안 天子의 비호와 계획경제 아래 우선 공급을 받아 왔기 때문에 고난을 이겨내는 정신력과 일하려는 마음이 퇴화
2) 江蘇人과 折江人은 北京의 의복시장, 廣東人은 레스토랑, 山東人은 야채시장을 독점. 江蘇省 果喜實業의 짱궈시(張果喜) 等 상당수의 외지인들이 北京에서 억만장자가 됨


2. 上海人 : 中國의 希望의 별

[華麗한 國際都市, 上海]

上海는 근대적 도시 건설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
1) 양자강 河口에 위치하여 수상교통이 발달하고, 삼각주 지역으로 원자재와 노동력이 풍부하며 기후가 적당
2) 蘇州와 杭州로 통하는 水路가 있어 北京으로 가는 運河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로 서쪽에는 풍부하고 광대한 평야가 있음

上海는 1842년 아편전쟁 후 南京條約에 따라 개항
1) 한적한 시골 바닷가 마을이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하면서 공업, 상업, 금융의 중심이 되고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성장. 동양의 파리, 극동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동서양 문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上海만의 문화를 창조
2) 上海는 군벌, 부랑자, 외국인, 혁명 노동자가 활동하던 시기를 겪으면서 상업 도시와 전통 농업이 서로 충돌하면서 융화되고, 최첨단과 옛 것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 일반 中國人들은 上海人을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와 결부시키지만 동시에 제멋대로이고 실속만 차리는 계산적이며 불성실한 사람으로 생각

上海의 경제발전과 함께 외래 인구가 급증했고 上海人은 해외로 진출
1) 1930년대 租界地 시대 호적조사에 의하면 전체 上海人구의 30%만 조상 대대로 上海지역에 살던 사람이었고 70%는 인근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인구. 廣東系, 寧波系, 江蘇省 북부계 上海人 等 여러 지방인들이 모여上海人을 구성
2) 백년 이상 거주한 명문가도 없고 토착 上海人도 적은 대신 上海人의 해외진출은 활발. 1990년 국외에서 취업했거나 유학중인 中國人 23만명 중 上海人이 약 6만 6,500명으로 전국 1위

上海人은 생존능력이 매우 강하며 환경을 이용하여 경제발전을 이룩
1) 上海에서는 "길을 걷는다"는 말 대신 "길을 달린다"는 말이 사용될 정도로 上海人들은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분투하며 무엇인가를 잡으려 필사적
2) 上海는 北京 등에 비해 문화적·역사적 연륜이 짧아 오히려 새로운 경제메커니즘을 수용하는데 유리. 中國人과 외국인이 混居하여 문화교류가 활발할 수 있었고 경제발전에 기여

上海는 역사적으로 開放이 生存과 進步라는 사실을 증명
1) 1843년 開港과 함께 上海는 自由港으로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성공을 손에 쥐는 중국 속의 또 다른 국가로 발전
2) 租界地라는 이점을 이용, 軍閥 戰爭과 農民 蜂起를 피해 아무런 戰禍도 입지 않았고, 1차 대전 후 공황기에도 경제 호황을 누림. 외국 상인들이 정치적 구속과 법적 제약이 약한 上海로 투자를 전환. 1931년 영국, 미국, 일본 3개국 상인의 투자가 10억 5,000만불

국제도시로서 上海는 買辦의 탄생지이기도 함
1) 매판은 외국상사가 수입한 상품을 중국시장에서 판매하거나 외국상사가 중국상품을 사서 수출할 때 이를 대행
2) 중개와 거간을 통해 上海의 수출입 루트가 급속히 확대되었고 대외무역에서 서로 다른 체제와 시장기구의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 매판은 자본축적과 함께 세계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근대 상공업 및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上海의 초기 기업가로 성장. 1920 ~ 30년대에 上海의 상공인들은 국내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해외시장에도 대대적으로 진출. 일본제품이 지배하던 동남아에서 上海 상공인들이 일본을 대체

현재 上海는 金融 中心地이며 東方의 월스트리트로 발전
1) 1847년 영국계 은행이 上海에 처음 들어온 이후 국제적 외환업무를 시작했고 上海人은 일찍부터 증권거래에 참여, 1910년 公平易이라는 중국 최초의 증권회사를 설립. 1935년까지 上海에 109개의 은행이 설립되어 뉴욕, 런던 다음으로 세계 세 번째 금융시장이 되기도 함
2) 현재 上海에는 70여개의 국내외 은행이 개설, 동방의 월스트리트라 불림
 

[上海人의 特性]

上海人은 20세기 초부터 시민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
1) 折江省 지역에서 宮廷衣服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匠人들이 上海로 이주, 의상실을 개업하면서 上海人들은 기성복 대신 맞춤복을 선호. 上海 재봉사가 만든 무대 의상이 전국적으로 연극계의 유행을 창출
2) 上海人들은 유행을 따르되 빨강, 자주색 等 화려한 색조보다는 검정이나 회색 等 소박하고 담담한 패션을 중시. 합리적인 上海人들은 무조건 비싼 것을 구매하지 않고, 질 좋은 품질의 싼 제품을 선호하는 경제 관념을 지님

上海人은 이익추구 성향이 강하며 地位나 財産으로 사람을 평가
1) "천하가 혼란스러운 것도 돈벌이 때문이고, 천하가 즐거운 것도 돈벌이 때문이다"라는 말이 上海人들의 참된 모습을 잘 보여줌. 돈버는 일은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上海人들이 준수하는 사회도덕이나 윤리
2) 말씨와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며 교만하고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간주하는 경향

上海人은 냉정하고 명분보다는 實利를 重視하는 성향이 있으며 돈벌이를 위해 투기에도 적극적
1) 上海人은 외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여 上海말을 못할 경우 상점에서 바가지를 쓸 수도 있음
2) 재난을 피하기 위해 정치 等 경제 外의 문제에 무관심한 척하며 정치 투쟁의 치열함 속에서도 소시민적 생활을 하는 현명함이 몸에 배어 있음
3) 上海人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투기적인 주식투자를 감행

국제도시적 성격이 강해 외국인에 대해서는 차별의식이 적고 일상 대화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보통
1) 대학생의 영어 수준도 높고 유학을 의식해 개방적인 교육이 행해짐
2) 큰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해외로 나가고 上海에서 이미 성공한 사람도 해외로 나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 海外留學이 보편화

上海는 상업도시의 전통이 있어 市場指向性이 높고 외국 정보가 빨리 들어와 流行이 쉽게 확산
1) 원래 청나라 말기 上海에서 유행한 京劇을 의미하는 海派文化는 上海文化를 의미하게 되었음. 즉 北京의 연극인이나 문화인들이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는 上海 京劇을 경시하는 말로 바뀜. 上海文化는 유행에 쉽게 물들어 천편일률적이 되면서 개성이 없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저급화, 패션화되어간다는 평가를 들음
2) 上海人은 사고가 자유롭고 혁신적이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반면 경박하고 저속하고 무절제하다는 단점이 있음


[實利를 重視하는 上海人]

上海人은 본능적으로 實利를 追求하는데 기민하며 이는 증권투자에서도 마찬가지
1) 1984년 12월 최초로 上海에 주식거래가 시작되자 발매 6시간만에 주식이 다 팔렸음. 다른 지방에서는 잘 팔리지 않아 공산당 간부들에게 할당해서 거의 강제적으로 판매
2) 1992년 2월 주식 거래수량과 변동폭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자 주식붐이 일어나면서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여 희비가 엇갈림. 현재 개인투자가는 약 3백만명으로서 인구 4명당 한명 꼴. 주식시장의 급성장으로 하이테크 산업이 발전, 자동차, 통신설비, 발전소 설비, 석유화학, 철강, 가전제품 等 6대 산업이 上海 工業의 지주

上海人의 衣食住에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上海人의 가치가 반영
1) 上海人은 세끼 식사 외에도 야식이나 간식을 즐기며 잘 차려 맛있게 먹어야 만족. 싸고 맛있는 것을 선호하므로 上海人은 직접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고 대체로 요리를 잘함
2) 주택 사정이 좋지 않아 대부분 집이 좁고 건물은 낡았지만 실내장식에 많이 지출
3) 上海人은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교조주의나 대의명분을 싫어해 추상적 가치로 목숨을 버리는 정치인의 정열을 이해하지 못함

上海人은 해외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높아 해외유학생이 많음
1) 전체 中國人 해외유학생 중 上海人이 1위를 차지하며 北京人의 유학이 대부분 국비인 것과는 달리 자비 유학이 일반적. 이는 해외유학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부자가 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2) 上海人은 결혼도 외국식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上海 女性은 결혼에 있어서도 냉정하게 이익을 따져 대상자로 외국인을 선호

上海人들은 조계지 역사를 거치면서 開放性과 排他性을 동시에 보유
1) 조계지 역사를 통해 上海人은 시야를 확대하고 개척정신을 길렀으나 대량으로 유입되는 외지인들과의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배타적으로 변함
2) 대학 진학도 上海내에서 이루어져 전국 출신이 모여드는 北京에도 上海人은 별로 없음. "관료가 되어 北京에 있기보다 上海에서 거지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

上海人은 이익만을 추구하고 의리가 없다는 평가도 듣고 있음
1) 손익계산이 모든 일의 기준이 되는 上海人에게는 義가 결핍되어 拜金主義가 만연하게 되었으며 사람과의 교제도 상업화되고 저속화 되어감
2) 경제발전과 함께 저속한 유행어가 만연하는 等 사회적 도덕심과 공공의식이 저하되는 퇴폐 풍조도 증가


3. 廣東人 : 世界語, 共同語, 廣東人

[食道樂의 故鄕인 廣東]

현재의 廣東人은 순수한 漢族이 아니고 南越系의 후손, 이주해 온 한민족, 동남아에서 北上한 사람들이 혼합된 인종
1) 廣東의 토착인들은 中原의 漢族과 다른 민족이었으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수십만명을 中原에서 이주시켜 토착민족과 공존하도록 했음
2) 토착민족의 일부는 秦의 멸망과 함께 기원전 204년 南越國을 세웠으며 漢의 등장과 함께 廣東은 재통일

廣東에 살던 월계인들은 북방언어와 다른 언어를 발전시켰으며 이것이 현재의 廣東語로 발전
1) 현재의 廣東語는 월계인의 언어로서 중원 한족어와 달랐으나 중원의 한문화를 수용하면서 발전하여 상호소통이 가능. 廣東語는 북방언어보다도 고대 한자의 音價를 더 많이 보존
2) 廣東省 출신의 해외이주로 인해 廣東語는 전 세계 화교사회의 언어로 자리잡음. 전 세계 차이나타운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실질적으로 廣東語

廣東人도 언어에 따라 廣州人, 客家人, 潮州人으로 크게 구분
1) 광주인은 행동파이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廣東語 중에서도 越語를 사용하며 경제적 성공에 만족하고 운명을 믿는 종교를 만들었음
2) 객가인은 근면하여 농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으며 관료가 많음. 언어로는 客家語(廣東 人口의 30% 정도)를 사용
3) 조주인은 廣東省 북부지역의 조주와 산두(汕頭)출신을 말하며 두뇌가 명석하고 행동력이 높아 해외 이주자가 많음. 조주인의 언어는 민어이며 해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廣東은 食道樂의 본고장으로 廣東人들은 먹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즐거움으로 생각
1) 廣東은 아열대에 위치하여 각종 농수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음식문화가 발전
2) 廣東料理는 越菜라고 불리며 廣東의 각종 특산물을 기초로 발전. 廣東人들은 '봄날의 햇볕과 겨울의 흰눈'까지 음식재료로 삼는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
3) 야생동물 外에 고양이, 쥐까지 요리재료로 활용하며 원숭이의 골로 만든 후惱湯 요리가 유명

廣東人들의 아침식사는 茶를 마시면서 菓子(디엔심, 點心)를 먹는 형태
1) 廣東人은 아침식사를 위해 찻집에 가며 찻집은 하루 중 아침시간에 손님이 가장 많음
2) 음식문화와 함께 발전한 茶文化는 독특하고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각종 만두가 전통적으로 유명. 쇠고기 샤오마이(牛肉燒賣), 새우 만두, 옥액차소포(玉液叉燒包), 빙화살기마(氷花薩奇馬)
3) 茶로는 청나라 시절에 시작된 고색창연한 차 도구인 烹茶四寶와 격식을 중시하는 조주와 산두 지방의 功夫茶가 유명
4) 茶文化는 찻집을 발전시켰으며 지금도 찻집은 비즈니스의 중심지. 그러나 현재의 찻집 문화는 과거의 순박함을 상실하고 퇴폐적으로 변모

廣東人들은 시간과 돈을 중시하며 높은 생활력을 보유
1) 廣東人은 다른 지역인들에 비해 훨씬 부지런하여 북방도시에 비해 아침 일찍 일을 시작
2) 廣東人은 시간을 돈과 같이 중시 여겨 북방에서는 8시 이후에 영업이 시작되지만 廣東에서는 이보다 두어 시간 이전에 시작됨

廣東人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높고 새로운 문화도 쉽게 수용
1) 1970년대 홍콩에서 성공한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활발히 확산된 지역이 廣東이며, 가라오케도 廣東에서 가장 먼저 시작. 廣東에서는 홍콩, 대만의 가수나 배우 等 연예인의 인기가 높음. 北京人이 록음악을 좋아한다면 廣東人은 팝을 선호
2) 사용하는 브랜드가 인격을 결정할 정도로 고가의 브랜드들이 확산
 

[經濟開發의 先頭, 廣東人]

廣東은 1970년대말 중국의 개방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기 시작
1) 1979년 廣東성 공산당위원회의 서기인 시중쉰(習仲勛)은 廣東이 자주적 우위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중앙에 건의
2) '80년 8월 全人代 상무위원회는 廣東省 경제특구 조례 및 관련 규정을 통과
3) '80년 11월 廣東省 공산당 서기로 취임한 런중이(任仲夷)가 대외적개방, 대내적 규제완화, 하급관리의 권한 확대 등의 표어를 걸고 개방정책에 박차

廣東성의 적극적인 개방으로 年功序列 사회인 중국에도 젊은 신흥 성공기업인들이 출현하기 시작
1) 廣東의 광고대리점인 白馬는 '85년 광주미술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창립하여 건강식품 '아폴로'의 광고를 히트시키면서 부상. 이러한 신흥 성공기업인들이 廣東 經濟의 주요 부분을 차지
2) 廣東이 경제발전을 선도하면서 영향력이 북방으로 확산되기 시작. '92년 上海 공산당서기인 우방궈(吳幇國)는 시찰단을 끌고 廣東을 방문하여 "여러분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음
3) 廣東製品이 북방에 확산되면서 北京 등 북방에서는 廣東製가 인기. 일반 공산품 外에 음악, 서적 등 廣東의 문화까지 북방에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상황

廣東의 경제발전으로 주변 지역 인구가 廣東으로 이주하여 廣東에서 애환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
1) 매년 약 300만명의 외지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태. 심천, 주해 等 경제특구를 일으킨 원동력은 외지에서 온 노동자. 직장을 얻지 못한 외지인 중 일부는 길거리에서 유랑(이들을 盲流라고 함)
2) 廣東 북부에 있는 湖南省은 廣東의 발전에 자극을 받고 있으며 廣東으로 이주 온 많은 湖南人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3) 廣東에 진출한 泗천人들은 대부분 육체노동에 종사하며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泗천人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아 廣東人들의 미움을 사고 있음
 

[拜金主義者 廣東人]

廣東人은 돈벌기(發財)를 중시하여 부자가 되는 병에 걸려 있다는 평을 들음
1) 돈벌기를 위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신을 믿어 廣東의 佛敎 혹은 道敎寺院에는 祈福을 하는 사람이 많음
2) 廣東人은 순조롭다는 순(順)과 發財의 발(發)과 音이 유사한 6과 8을 특히 좋아함. 자동차 번호 等에 이 숫자가 들어가면 더 비쌈  
3) 廣東人은 음력 설날에 恭喜發財(돈많이 벌기를 기원합니다), 利是逗來(돈이 많이 굴러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等으로 인사

廣東人이 돈벌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廣東에는 사회문제도 많이 발생
1) 상품의 적정가격제가 무시되고 있고 불법 상품이 난무
2) 절도, 강도 等 사회범죄로 인해 정상생활이 위협받을 정도. 외래인구의 유입이 많고 일부 廣東人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과 이익을 추구
3) 廣東人은 "돈이 없는 것이 온갖 惡의 根源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고 범죄는 돈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고 있음. 廣東에 절도, 강도가 만연하는 것은 배금주의에 기인


4. 山東人 : 孔子, 孟子의 後孫

[齊와 魯의 文化가 竝存]

山東은 儒家思想이 시작된 곳으로 山東人은 儒家의 후예
1) 山東文化(齊·魯文化)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문화적 융합을 통해 형성됐으며 공자와 맹자 等의 활약으로 유가사상이 핵심. 공자, 맹자, 순자 等은 모두 노나라 출신
2) 노나라에서 시작된 유가사상은 전국시대에 제나라로 전파되었고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되어 漢의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발전
3) 山東人들은 유가사상의 영향으로 농업을 중시하고 경제와 상업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

    
[儒家文化의 影響을 받은 山東人]

儒家文化의 영향으로 안정적인 사회 기풍이 형성되어 山東人의 창조의식과 창조능력을 퇴화
1) 山東人의 기질은 "질박하고 義를 안다" "소박하고 순수하다" "여유롭고 활발하다" "情이 많고 돈독하다"로 표현
2) 순박한 民風은 땅을 중시하는 重土意識과 儒家에 기인. 儒家는 농업문화의 산물로서 山東人들이 떼어놓을 수 없는 신조
3) 儒家의 영향을 받아 山東은 갈수록 창조적인 영웅과 위대한 인물이 나지 않게 되었음. 山東의 위인들은 대부분 춘추전국시대에 배출

전통 儒家文化는 山東의 상업발전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제인을 배출하지 못함
1) 山東人은 순수하나 융통성이 없고, 충실하고 묵직하나 개방성이 부족하고, 규범을 잘 지키나 모험정신이 결여. 山東의 民風 중 하나는 儒家文化에 큰 영향을 받은 '重文重敎'(학문과 교육을 중시)
2) 도덕 수양을 중시하는 儒家文化는 생산노동을 경시하여 山東은 정치, 문화, 역사 분야에서는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나 경제인은 소수. 山東 出身 유명인사 356명 中 경제인은 2명에 불과

山東人은 儒家文化의 영향으로 높은 道德性을 유지
1) 山東人은 정직, 충성, 애국의 품격을 비롯하여 전통의 중시, 권위에 대한 복종, 사리에 밝고 만전을 기하는 성격을 소유
2) 山東人은 "군자는 곤궁하더라도 지조를 지킨다"에서 보듯이 유생적 성격을 지님. 책 속의 이상을 믿고 따르며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귀를 경시
3) 山東人들은 務實力行의 전통을 갖고 있고 정직, 순박, 관용, 선량한 성격을 지님
4) 山東人들은 機智가 넘치지 않고 경제분야에 있어서 商道가 밝지 못하므로 山東人과 교제할 때 사기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됨

山東은 호방한 기질을 지녀 과거에는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
1) 제갈공명, 거지 출신으로 유일하게 역사책에 기록된 우신(武訓), 농민 봉기의 우두머리 黃巢, 羅敎의 창시자 羅淸 등
2) '山東人은 모두 사나이 대장부'라는 의미의 「山東豪漢」으로 일컬음. 山東人이 갖추고 있는 일종의 고귀한 품성인 충성과 애국정신을 반영한 말

忠誠은 山東人들이 미덕으로 삼는 최고의 덕목
1) 山東의 역사상 국가와 왕에 충성한 사람은 부지기수. 제갈공명, 왜구를 물리친 戚繼光, 만리장성을 건축한 제나라 출신 몽념, 元代의 유명한 정치가 曺元用 등
2) 역사적으로 악명높은 사람도 충효애국정신은 마찬가지. 秀才 軍閥 우페이푸(吳佩孚)는 1935년 화북친화 정책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여 결국 피살. 악행을 많이 해 混世魔王으로 불릴 정도로 사람들의 원성을 샀던 짱중창(張宗昌)도 일본의 꼭두각시 역할을 거부했고 효성이 지극


[山東人의 長短點]

성실한 山東人이 중국경제 발전에 큰 역할
1) 山東人들은 어려움을 근본으로 삼고, 어려움을 명예로 삼으며,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삼는 苦行精神을 갖고 있음
2) 山東人은 강한 인내심으로 北京 채소시장을 독점했으며 東北地域을 개발하는 주력 집단. 東北人 중 80% 이상이 山東 出身
3) 東北地域의 공업에서 운수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과 인내력이 필요한 산업인력은 山東人이 대부분을 차지

山東은 敎育을 의식주와 같이 중시하고 人材를 養成
1) 孔子의 온故而之新의 교육사상과 孟子의 교육중시 철학의 영향을 받아 山東人은 의식주를 아껴 자제들을 교육
2)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는 育英事業을 실시하는 등 전문적 교육가가 계속 배출. 武訓은 일생 동안 거지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 山東은 전국적으로 學校建立運動의 선봉 역할

山東人들은 平等主義와 富의 均等을 추구
1) 山東豪漢은 의협심이 강한 동시에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정의의 집단으로 알려짐
2) 貧富의 均衡을 실행하려는 農民 蜂起가 山東에서 자주 발발. 중국사 최초로 여성이 지도자가 되어 농민 봉기를 주도. 당나라 말기의 왕선지와 황소의 난, 北宋 말기의 송강의 난

儒家思想의 부정적 영향으로 山東人은 浪漫主義 정신과 融通性이 부족
1) 山東人은 봉건통치 때문에 과도하게 우직하고 어리석은 충성심을 지니게 되었고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할 뿐 창의성이 부족
2) 山東人들은 대체로 인내력은 강하나 절대 모험하지 않으며 개성과 독립된 사고가 실종되어 항상 순종하는 성격을 가짐. 제나라 사람들은 해외개척에 나선 경험이 있으나 齊魯文化의 특징으로 山東人은 점차 개척정신과 모험정신을 상실. 齊魯文化는 본질적으로 '다스리는 사람'의 문화로서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통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음

山東에는 皇帝, 聖人, 老人, 祖上의 절대 권위와 전통 생활방식을 지키는 풍토가 형
1) 옛 것을 따르고 현실에 안주하며 쉽게 만족하는 山東人의 사고방식은 山東의 경제발전에 장애  
2) 山東人에게는 끊임없이 개척하고 획득하는 정신을 새로이 불어넣을 필요가 있음

술을 마시는 것은 山東에서는 하나의 風俗文化로 정착되어 山東省에서 출품되는 술의 종류와 상표가 가장 많음  
1) 술을 마시는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이고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반푼이로 취급당하는 사회
2) 사람 간의 감정이나 인간관계도 술을 통해 해결

 

5. 東北人 : 多樣한 靈魂이 흐르는 東北人

[地理的 特性과 文化]

東北文化는 고립된 상태에서 독립 발전해 中原文化와 필적하는 수준에 도달
1) 民族의 기원을 살펴 보면 東北地方의 남부와 서남부 쪽은 漢族, 서부는 동호족의 선조, 중부 및 동부와 동남부는 예맥족,  동북부는 소신족에 뿌리
2) 東北地域은 동쪽은 흥안령산맥과 장백산맥, 서쪽은 몽고고원, 서남쪽은 평원, 中原과는 바다와 접해 있음. 지리적 구조로 內向性을 갖고 있으며 호방하고 두려움이 없는  한편 순박하고 솔직한 성격을 갖고 있음
3) 東北人은 운명의 신비한 힘을 믿지 않음. 채집과 수렵에 종사하고 있으며 강인한 의지와 인내력으로 곤란과 충격을 극복해 왔음

東北地域에서도 3省의 氣質이 상이하여 "앞에는 이리가 있고 뒤에는 호랑이가 있는데 중간에는 멍청이"라고 표현
1) 遼寧人은 해안과 평원에서 생활하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로 개혁과 개방의 진도가 빠름(이리)
2) 吉林人은 사고방식도 폐쇄적이고 경계가 명확, 창조정신이 부족하고 중앙정부의 정책을 그저 성실하게 집행하거나 소극적(멍청이)
3) 黑龍江人은 평원과 산악이 혼재된 곳에서 거주하여 사고방식이 半 개방적이며, 국가정책을 현실과 잘 결합시켜 효과적인 대책을 추진(호랑이)

東北人들은 본래 氣骨이 壯大하고 호탕하며 勇猛스러운 氣
1) 19세기말 어려운 생활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東北人들이 匪賊이 되는 경우가 많았음. 한때 만주에서는 匪賊과 庶民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
2) 東北人은 싸움을 잘하고 게으른 특성도 보유. 山東人의 유입으로 東北人들은 욕을 잘함  


[官僚主義에 멍든 東北人]

官僚主義 文化가 팽배한 東北人
1) 관료적 특성이 강한 중국에서도 東北地方은 더 폐쇄적이고 낙후된 官僚文化를 가지고 있음
2) 관료의 수가 많으며 직장, 학교 等에서도 관료조직이 성행. 학교의 경우에도 한 학급 60명 中 50명이 감투를 만들어 맡을 정도
3) 東北人은 官職을 좋아하고, 官職을 구하려 애쓰고, 官僚를 두려워 함

官僚主義 歷史는 짧지만 弊害는 심각
1) 東北의 관료주의 전통은 백여년 정도로 수천년간 쌓여 온 타 지역에 비해서는 역사적 연원이 짧음
2) 그러나 직무, 등급, 대우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관료주의 문화는 다른 지역보다 더 뿌리깊은 실정

東北地方에서도 改革開放과 함께 官僚主義가 金錢主義로 변화
1) 1991년에 요녕성에 사정바람이 불면서 많은 젊은 관료들이 퇴직, 실업계로 투신하는 等 東北에서는 한때 관료들의 퇴직바람이 발생(辭職波瀾).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다원화
2) 改革開放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기존 관료들의 우려로 관료주의의 타파는 아직 기대하기 어려움
3)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東北의 관료주의는 '피사의 사탑'처럼 영원히 기울어진 채 잔존할 것임


[閉鎖的인 東北人]

東北人들은 나태하고 의존적이며 폐쇄적 특성을 소유하여 改革開放 과정에서 뒤늦게 각성
1) 1950년대 東北 3省은 경제발전이 전국에서 선두였지만 개방 추세에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1990년에는 전국 최저 순위를 기록
2) 옛 것을 답습하고 진취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 일련의 낙후되고 마비된 관념 때문에 경제발전이 지연

역사적으로 東北人은 "싸움에는 대단하나 장사에는 소심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시장이나 상품에 대한 감각이 무딤
1) 과거 東北을 개척한 사람들(포퇴자)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설정하는 小農意識이 강함
2) 특히 1950년대 이후 계획경제체제에서 창조력과 능동성이 약화되고 경쟁의식과 위험 도전의식이 소실
3) 小農意識과 계획경제의 폐단으로 東北人은 발전의 깊이, 범위, 힘 等이 제한되었고 改革開放에 익숙하지 못하게 됨

東北地域의 폐쇄성 때문에 대외 이미지가 실추
1) 人口 600만의 長春은 60개의 대학과 전문대학이 있고 100개의 독립 연구기관이 있으며, 전문기술인재만 해도 30만명에 이르나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음
2) 외국인은 물론 다른 지역의 中國人들도 東北을 모르거나 東北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3) 이 때문에 東北의 제품 역시 판로를 찾지 못한 채 단지 지역내에만 통용되었고 시장도 활발하게 개설되지 않음

東北人들은 想像力과 創造力이 부족
1) 東北地域의 旅順은 군사상 요충지이며 관광명소이지만 외국인 출입금지 구역이 많아 관광수입 창출 기회를 상실
2) 최근에는 旅順을 新港 經濟地區 거점으로 개발하고 있으나 개발의지가 부족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함  

개방 이후에도 小農 階級的 市場意識이 지배
1) 東北의 근시안적 대응으로 이들이 중점을 둔 프로젝트는 모두 단선상품으로 시장 포화상태
2) 東北의 개인 경영업자는 거의 少資本 經營이며 小規模 運營으로서 大企業으로 발돋움하려는 의지와 의욕이 부족
 

[開放의 물결을 타는 東北 : 人材流出이 深刻]

최근 들어 東北人의 남방지역 이동이 두드러짐
1) 東北 3省에서 山海關 남쪽으로 이동한 인구가 1991년에는 12만명을 넘어섬
2) 특수기술이나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 청년층의 이동이 두드러지면서 인재유출 문제가 심각한 상황
3)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비율이 전국에서 몇 번째지만 도리어 경제발전 속도는 전국에서 꼴찌
4) 귀중한 인재의 유출은 장래 東北 전체의 경제발전에 악영향. 東北지방은 토지는 넓고 인구가 적어 인구밀도가 1㎢당 112명
5) 경제성장과 발전은 노동자의 지혜와 노동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東北의 인구가 유출되면 그러한 힘도 소멸. 인재를 존중하고 활용하며 인재를 초빙하는 것이 급선무

開放의 물결 속에 대외 자본가들의 東北地域 진출과 東北人의 해외진출이 붐을 이루고 있음
1) 東北에는 출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공무, 사무, 유학, 사업, 시찰 等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외국으로 나감
2) 외국인의 진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국경도시인 흑하, 수분하, 길림성의 혼춘, 내몽고 만주리 等을 일급 국경 개방도시로 비준(1992. 3. 9). 지정학적 원인과 민족 혈연적 이유로 한국과 교역 열풍

출처/차이나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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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7-19 (월) 17:48
홈페이지 http://www.chinam.org
분 류 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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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성

 

국민성

 

       1. 만만디 (慢慢地)에서 콰이콰이디 (快快地)로

우리가 지금까지 중국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 '만만디'는 아직까지도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인이 만만디라는 의식적 특징을 보이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역사적 원인으로 중국의 3대 정신 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의 영향이 진취성의 결여로 나타난 것이다. 다음은 현대 체제의 원인으로 해방 이후인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경제체제를 단일 공유제 형태,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 의한 통제, 시장경제의 무시, 필요에 따른 평균 분배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적극성을 상실하게 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국민들의 의식은 快快地로 변하게 되었다. 대내개혁으로 공유체를 주축으로 하되 다양한 집체, 개체 경제 형식이 병존하는 소유제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고 경영방식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대전환함과 동시에 기업의 부속적지위를 개혁하여 상대적으로 독립된 상품생산자 및 경영자가 될 수 있게끔 변화시켰다.

노동에 따른 분배 방식을 채택하고 책임경영제와 분배방식을 실시하며 일부분의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을 허용하여 이른바 부유한 개체호 (個體戶)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반면 대외개방을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는데 대외투자와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이른바 삼자기업 (三資企業)을 허용하였고 경제특구의 설립과 더불어 연안 지역의 수출형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하여 현재는 연안지역과 내륙지역과의 경제발전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내륙지역으로 개방의 물결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인의 의식은 점차 변하고 있으며 특히 자신의 이익과 연결될 경우 우리보다도 빠른 快快地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현대 중국의 정치변화 중의 교훈 (문화대혁명)이 남아있어 좀처럼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확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남아에서 '빨리빨리'라는 말이 한국인을 표현하듯이, 한국인의 의식 중에는 중국인이 '만만디'가 '콰이콰이디'로의 변화가 만족스로운 정도는 아니고, 아직까지 공무원 및 은행, 국영상점 등에서는 만만디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택시 운전자를 필두로 '지아콰이 (加快)' 열기가 거세게 일반 기업체까지 번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인한 만만디의 구습으로는 경쟁에서 이길수 없다는 기본적인 논리가 점점 생활에 도입되고 있다.

 

2. 실질적인 것을 좋아한다 (실용성)

중국인은 외적인 환경이나 외모를 우리보다는 덜 중시하며, 실력과 실용을 중요시한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보다 점퍼나 편안한 옷을 즐겨 입는다. 더우기 그들은 설사 상담시 점퍼나 편안한 옷을 입었다고 해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실제로 출장 상담시 공장장이나, 총경리의 차림새는 일반 공인 (工人)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먹는 식생활은 최고급으로 잘 하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허술한 집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매우 알차게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3. 외관상 만민평등이다 (평등성)

모택동의 '여성이 사회의 반을 감당한다' 라는 말처럼 중국은 남녀평등사회로 거의 대부분의 여자가 직업을 갖고 있다. 중국은 해방전 국민당과의 전쟁시 여성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고 이는 해방 이후 사회주의체제가 공고히 되면서 남녀 평등이 일반화된 사회 관념이 되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경제적인 면에서 남자와 같이 결혼 후에도 직장을 계속 다니며 직장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승진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여자 고위관료 및 공장장, 총경리가 상당히 많으며, 가사노동, 자녀교육을 남녀가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는 남자가 요리하고, 자전거 타고 시장보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익이 기타 아시아 (특히 일본, 한국) 국가들 보다는 상당히 확보된 상태를 인정하나 아직까지도 대남주의자 (大男主義者)가 많으며,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가정에서도 여자 혼자서 가사일을 하며 직장 내에서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법으로 대도시 가정에 1자녀 밖에 낳을 수 없게 해놓았기 때문에 딸 1명이 있는 가정이 많지만 아직까지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

또한 중국에서는 거래선과 식사시 사장과 운전사가 한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고, 막역하게 지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직위, 연령, 성에 의해 별다른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외관상 평등하게 보이지만 일부 고위 간부의 친인척들, 그들과의 관계를 이용해 갖가지 정보를 독점하거나 이용해 치부하기도 하며 인산인해를 이루는 기차역에 공산당 간부 및 일부상류층을 위한 고급 대합실 등을 보면 중국은 결코 평등한 사회는 아니다.

 

4. 준법정신, 질서의식이 희박

후진국의 경우, 일반적 사항이지만 법체계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지키려는 의식도 희박하다. 최근 개혁 개방 이후 외부로부터 각종 형태의 범죄가 발생하나 일부 범법자의 경우 자기의 행위가 위법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법의식은 중국인 특유의 '나 하나만 괜찮으면 된다'라는 이기주의와도 결부되어 있다. 시장에서 저울 속이는 상인, 가짜 돈, 가짜 약, 가짜 골동품 등의 제현상이 변화의 과도기에 생기는 현상일지 모르지만 준법 정신이 희박하다.

중국인이 질서의식이 없다는 것은 실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곳도 있지만 좌우측 통행 구분없이 통행하고 신호등에 관계없이 통과하는 차량, 복잡한 버스 내에서 흡연, 기차표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새치기 등의 현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5. 중국인은 참을 줄 안다 (인내성)

중국인의 인내력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천하대세"와 "자연의 지배"에 대해 유순한 태도를 보이며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데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예를 들면 양자강 유역에서는 한 번 홍수가 나면 4 ~ 5개월 후에 겨우 물이 빠지는데 이 경우 그들은 기다리는 것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여기며, 또한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므로 지루한 열차여행 (북경 → 우루무치 5, 6일, 북경 → 쿤밍 3, 4일)도 묵묵히 견디며 참아내기도 한다. 기차역에서 수일을 지내면서 기차표를 구입하고, 수십 시간씩 딱딱한 의자에 앉아 이동해도 불평 한마디 없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지식분자들이 박해를 받으며 농촌으로 내려가 10년이 넘도록 농사를 지어도 별다른 불평없이 생활을 하였으며 복직을 한 후에도 또 성실히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다.

 

6. 중국인은 포기를 잘한다

중국인들은 '방법이 없다 (沒辦法)'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일을 추진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체념을 한다. 최근 개혁, 개방 이후 어설픈 법(法)망을 피해 돈을 버는 사람, 관계 (關係)를 이용해 이권을 따내는 사람, 수많은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을 모든 중국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집단 항의 및 고발 등의 조치를 않고 '방법이 없다'고 포기를 해버린다.
 
 

7. 철저한 개인주의다

자기 일이 아니거나 자기의 이익과 관계 없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을 한다. 기차표, 영화관표를 구입할 때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끼어들기로 표를 사는 사람이 있어도 있어도 만류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인의 개인주의는 일단 친구관계가 성립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중국인은 사귀기가 힘들지만 일단 사귀고 나면 자기 간까지 빼준다' 하는 얘기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신뢰성)

 

8. 배타성

중국인은 보편적으로 중화사상이란 민족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지고용원을 대할 때에도 동등·동류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9. 체면 (面子)을 중요시한다

'중국 사람들이 실질적인 것을 좋아한다'와 상반될 수도 있으나 중국인은 체면 깍이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이는 중국 유교사상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중국 부하 직원을 책망할 경우에는 필히 개인적으로 불러서 나무라야 하며, 중국인과 상담을 할 경우 상대방의 면목을 세워주면 상당히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중국사람은 面子를 중시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처리할 때에 친구의 소개장 혹은 소개를 통하면 처리 주관자가 친구의 面子를 생각해 쉽게 처리해 준다. 중국인은 집에서 가족끼리 식사할 경우에는 술을 마시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누구를 초대하거나 외부 식당에서 식사할 경우는 체면을 위해 술을 꼭 대접한다. 집에서 간단히 식사 (家常便飯)하자고 초대하고는 나오는 음식을 보면 식탁에 접시를 올려놓을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이 나오는 것도 체면(面子) 때문이다.
 
 

10. 결혼관 및 이혼문제

주로 연애결혼 (自由婚姻)이 주이나 중매에 의한 결혼도 있어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남녀를 연결시켜주는 TV,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이 있어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중매 전문회사도 성업중이고 신문 광고도 나온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1960, 1970년대에 성행 했던 국제결혼 (涉外婚姻)이 성행해 젊은층과 해외생활을 동경하는 중국 여성들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대학교 다닐 때 서로 연애를 하더라도 국가에서 분배한 직장이 같은 도시에 있지 않으면 결혼할 수가 없다. 직장을 옮기기가 상당히 힘들고 주택문제가 있어 결혼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젊은 여성들은 물론 경제적인 면을 결혼관의 첫째로 삼으며, 다음으로 성격, Vision을 고려하는 등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또한 중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권이어서 만약에 체면문제만 없다면 중국여성들도 대부분 직장이 가져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혼율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합의이혼은 상당히 간단하다. 쌍방이 재산합의를 하고 이혼신청서를 작성해서 근무기관의 증명서를 첨부하여 혼인등 기소에 가서 수속하면 이혼증이 발급된다. 이혼증 발급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된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사건을 보면 최근 여성원고가 남성보다 많다고 한다. 북경, 산서, 강서, 흑룡강 등지의 통계를 보면 여성이 이혼을 제기한 경우가 70%이고, 어떤 지방에서는 84%에 달하는 등 남편과 헤어지기로 원하는 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출처/차이나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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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6-29 (화) 17:18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6009    
중국인 자기 잘못에 대한 인정을 꺼리는 이유
중국인들과 개인적으로나 사업적으로 교류를 하면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부분이 중국인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상대 중국인이 잘못을 했는데도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온 사람 조차도 명백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점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읍니다.  물론 중국인들이 워낙 자존심이 강하기도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 이후 그들의 정치 체계에서 자아비판이라는 제도가 아직도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아비판이라는 것은 항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하며 그후 자아비판을 한 개인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정치적인 결과가 너무나 컸고, 지금 기성세대들이 청년 시절인 중국의 문화혁명기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가 많은 피해를 본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기성세대 뿐만아니라 그들의 자녀세대에서도 자아비판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고 하며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많은 잘못을 한 사람에게도 너무 큰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며, 특히 큰죄가 아닌 이상,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우기는 자에게 지나치게 추궁을 하지 않는 것도 관례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인들 중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해 핑게를 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중국의 근대역사를 알고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너무나 중국인들에게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많은 피해를 보는 경우를 볼 수 있었읍니다.

출처/인터넷


안정주: 위의 글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뭍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요? -[08/19-11:52]-
오지소식: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을 가지고 되도록 비유나 예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깨우치게 한다면 꼭 성령께서 역사하시리라 생각 됩니다. (직접 지적을 안해도 어딘지 모르게 배어나는 언어의 힘 속에..) -[09/04-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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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6-29 (화) 16:47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6441    
중국인과 사귀는 노하우

중국인과 사귀는 노하우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접촉이 많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서 매우 로맨틱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긴 역사를 지니고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 "인·의·충·효·예"라는 유교적 도덕심이 풍부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그곳에는 역사를 통해 배운 다양한 명소와 고적이 있으며 계림이나 태산과 같이 미관이 수려한 심산 유곡이 있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맛볼 수 있다는 등 중국이나 중국인을 소개한 책에는 이런 저런 좋은 내용이 많이 씌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대부분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직접 중국을 취재하며 경험한 느낌을 적어본다.

북경에서 길을 걸을 때 제일 처음 느낀 점은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경적을 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 만도 한데. 이렇게 경적을 울리는 이유는 눈앞에 자전거가 다니고 있어서라던가, 사람들이 무리하게 도로를 횡단하려고 한다거나 해서이다.

거리에는 차나 자전거, 사람 모두 제멋대로라고 할까,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가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기 때문에 우선 자기가 먼저 앞서야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양보하는 정신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주위야 어떻게 되든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하다보니 도로 정체가 일어나며 사고도 잦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 정도로 공공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공기가 나쁘기 때문에 가래가 연신 나오고, 쓰레기 무단투기는 너무도 당연하며, 버스 승차시 줄을 서지 않는데, 내리는 사람이나 타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한번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한 무리가 버스가 정차한 곳에 노도처럼 밀어닥치는 과정에서 몇몇 학생이 넘어졌다. 그런데도 넘어지지 않은 학생들은 서로 내가 먼저라며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올라탄다.

넘어진 사람들 속에 여자아이가 있어 무사할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우선 중국인이라고 하면 사람 숫자만 해도 엄청나기에 그곳에도 많은 부류가 층층이 존재하며 도덕심이 높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다만 우리들이 본 중국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런 광경을 많이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나만 좋으면 된다"는 정신을 분석해 보면 "나 자신밖에 믿지 못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자신, 가족, 친척, 특정의 동료밖에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긴 역사 중에서, 타 민족끼리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로서 사람들 간에 벽을 만들어 온 상황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단 의심을 가지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은,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대체로 경계심이 많다. 가게의 점원도 가장된 웃음이라도 흘리지 않으며 사람을 똑바로 위아래로 쳐다본다. 한국인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아무리 타인이라고 해도 그런 눈으로 사람을 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인이 일단 친해지면, 놀랄 정도로 상대방에게 잘한다. 일단 한패가 되고 나면 전면적으로 믿어주기에 이렇게까지라고 할 정도로 잘해 준다. 우리와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겉은 상냥한 듯하고 친절하게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의중을 살피고 있다.

중국인과 같이 일할 경우 "먼저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그 이후 교섭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업상 아무리 부드러운 웃음과 품위 있는 표현을 쓰더라도 중국인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된 순간, 태도가 완전히 변한다. 업무상의 이야기가 잘 풀리며, 일단 친구가 되면 그 얼굴만으로 만사 OK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은 체면을 소중히 여긴다. 중국인을 상대할 때는 상대방이 체면을 손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 사이에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기에 와서 상대의 체면을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어 반 중국적이라고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이 싫은 것은 아니다. 중국인에게도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좋은 점과 그렇지 않는 점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의 가치관, 민족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의 좋은 점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점도 알고 이를 풀어나갈 수 있어야만 진정 친한 사이라 할 수 있다. "아, 이렇구나." 하고 이해하면 오해나 트러블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주노(자유기고가)

     
  67
작성자 오지소식
작성일 2004-06-29 (화) 16:00
분 류 선교자료
ㆍ조회: 8265    
중국인이 즐겨쓰는 용어 ("펑여우"-친구) 이해

중국인들은 친구를 친형제만큼 가깝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중국

사람들만큼 살아가면서 '펑요우(朋友;친구)'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TV에서 방청객들을 부를 때도 '꽌중(觀衆)펑요우'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인들은 정말 친구란 말

사용하기 좋아합니다. '펑요우'라는 말은 어느새 중국어를 모르는 우리 한국사람들 귀에도 익숙해

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펑요우'라는 말에 현혹되어 냉정을 요하는 중국인들과의 비즈니스 관계에서 감성에 이

끌린 나머지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서로간에 '펑요우'가 돼야 모든 비

즈니스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펑요우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친구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사람을 만날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납니다. 엄밀히 말해 인간관계에서 목적없는 만남은

'조우(遇見;위젠)'에 불과합니다. 하물며 외국인인 중국인들과 만날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국땅에 사람이 없어 일부러 중국까지 날라와서 그들을 만나겠습니까. 따라서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식성도 다른 중국사람들을 만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설령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중국사람들은 우리를 만날때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대

합니다. 이 세상에서 중국사람들만큼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도 없는데 아무 목적 없이

나올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들과의 친구관계는 더 이상

실속이 없거나 그나마 더 지속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서로의 공동이익을 찾느냐가 관건(關鍵;꽌젠)입니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중국사람들에게 '너는 나를 만나면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이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운데 나의 몫을 어떻게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처음에는 비교적 쉽게 만나 줍니다. 하지만 첫만남은 어디까지나 탐색전입니다. 그들

은 만난 결과를 놓고 분석을 합니다. 즉 그날 만난 인물이 어느정도의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 따라

서 앞으로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를 상대할 것인지를 토의하고 분석합니다. 만약 상대에 대한 정보

가 충분치 못하면 다시 기회를 만들거나 기다립니다. 중국사람들에게 이는 개인이나 기업체 단체

국가기관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중국사람들을 몇차례 만나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들을 초청하면, 특히 첫 만남일 경우 여러명이 떼

를 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수 때문에 낭패를 보기도 합니

다. 이러는 이유는 아주 간단 명료합니다.

선을 보는 데는 가급적 여러명이 보는 것이 상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밥

먹을 데가 없어 나온 것으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따라서 중국사람들과 일정기간 상호 탐색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몇 번 만나서 단번에 무슨 결과를

얻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두차례 미팅을 갖고 나서 '펑요우(朋友;친구)'라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상대

방을 기쁘게 하는 '하오화(好話)'에 능한 그들과 만날 당시는 마치 큰 성과를 얻은 것 같지만 막상

비행기 타고 돌아와 생각해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몇번 만나서 MOU(양해각서) 맺었다고 일이 금방 성사될 것 같이 보여도 본 계약으로 이어지기까

지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즉 중국인들과의 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까지는 반드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중국말에 '처음 만나면 낯설고(一回生) 두번 만나면 낯익고(二回熟) 세번 만나면 친구가 되고(三回

朋) 네번 만나면 오랜(언제나) 친구가 된다(四回老朋).'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라오(老)'는 '오래되다'는 뜻과 함께 '언제나, 항상'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我老愛ni2'는 '나는 항상 너를 사랑해'처럼 말입니다.



중국인들과 만나서 진정한 '하오펑요우(好朋友;좋은친구)'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번 만나

'라오펑요우(老朋友)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어떤 경우라도 상대가 있는 경우 헛수고를 줄이고 서로에게 유익한 성과를 거두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

으로 그들의 일반적인 특성과 교우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를 '펑요우(朋友)'라고 불러준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를 떠

올리면 아니됩니다. 그들이 첫대면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남발하는 '펑요우'는 차라리 '술친

구(酒友)'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시는 게 나중에 낭패를 보지 않는 길입니다.

출처/차이나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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